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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조금씩 찬찬히 들여다보면

by 종업원 2024. 5. 6.

2024. 5. 6


10년 전쯤에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데, 내 말엔 대충 고개만 끄덕이는 것 같아 눈동자를 보니 내 얼굴 구석구석을 흘끔거리는 거였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은 내 얘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구나 정도로만 여겼는데 요즘에 와서 그 남자가 왜 이야기 나누는 데 집중하지 않고 얼굴을 흘끔거렸는지 알 것도 같다. 거기에 숨은 뜻이 있다기보단 '그러기도 하는구나' 싶은 정도이지만 그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으니 생각지 못한 작은 작은 매듭 하나를 푼 느낌이다.   

*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땐 '고백'하려는 힘이 느껴져 애써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할 때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때때로 그저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걸 이제서야 어슴푸레 느낀다. 여럿이 둘러 앉아 최종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옆자리에서 종종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짬이 생길 때가 있다. 곁님이 이렇게 보았을까, 아이가 어버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이쯤이었을까, 어림짐작해볼 때도 있지만 커다란 나무를 가까이서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얼굴에 퍼진 맑고 슬픈 주름을 따라가다보면 이 사람이 품은 마음이 말을 따라 흐르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래, 사람이 이렇게 맑을 수도 있구나, 슬픔을 품되 그걸 내비치지 않고 기쁨과 웃음과 사랑만을 내어놓을 수도 있구나, 내가 그리 되지 못하더라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이가 곁에 있으니 나도 그 꿈과 뜻을 품으며 살 수 있겠구나 싶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 차를 마시며 한 시간정도 지난 밤 나누었던 이야기를 마치 꿈을 꾸듯 떠올리곤 한다. 그땐 말과 마음과 얼굴이 나뉘지 않고 하나다.      

*

만남이 이어지면 그 사람이 마음에 남는데, 겉모습보단 말이 또렷하다. 말을 떠올리다보면 그 사람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가끔 사람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조금씩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쁘지 않은 곳이 없다. 언젠가 모른 척 하며 한 사람 얼굴을 흘깃 본 적이 있다. 보고 있으면 자꾸 더 보고 싶어 그저 흘깃 볼 뿐이다. 그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코로 크게 숨을 들여마시곤 한다. 그 사람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기에 보고 싶은 마음이 방해 받을 일도 없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그 얼굴에 조금 다가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새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 되어 그 사람 얼굴을 즐겁게 떠올린다. '저는 오늘도 이렇게 당신께 조금씩 다가가고 있답니다.' 흐읍~ 하고 잠깐 숨을 머금고, 보고 싶은 얼굴과 마음을 품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VeXeZ2Volss&list=PLocGgXTFUccRlPX0SQqJwtwg_LeuY6h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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