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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초복과 다복

by 종업원 2012. 7. 19.



7월 18일, 다들 초복이라고 떠들어대며 닭이니, 개니 땀을 흘리며 육고기를 뜯었을 오늘, 잠깐 독서를 하고 약간 메모를 하며 오전을 흘려보내다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산모가 되어 누워 있는 내 누나를 보기 위해 나섰다. 처음으로 가본 산부인과에는 젊은 처자들로 넘쳐났고 나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 마치 새끼를 낳은 어미처럼 누워 있는 내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산모가 누워 있는 방은 매우 더웠으며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먼저 도착한 내 어머니와 나는 근 두달만에 만나는 참이라 반갑게, 예의 그러하듯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산모인 내 누나는 그게 섭섭했는지 우리 모자가 돌아가고 난 뒤 기어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왕따'니 뭐니 하는 말을 섞어가며 성토를 했나보다. 


그 전화를 받기 전 나는 내 어머니와 진시장에 들러 여름 이불 한 채를 구입했다.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이후 재래 시장들이 죽어간다던 이야기를 풍문처럼 전해들은 게 벌써 오래전이지만 작은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선 진시장의 지하는 '다른 세계'를 방불케 할 정도로 별천지였는데, 한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통로 옆으로 수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참으로 별스럽게 보였던 것.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연신 말을 거는 점원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이불들을 매만지며 이리저리 마치 아는 상점이라도 있는 냥, 그러나 아무런 계획이 없는 사람마냥 운신하는 '그녀'의 동선을 유심히 살폈다. 오래전 동네 시장에서 운동화를 살 때 터무니 없이 가격을 깎아대던 그 모습이 언뜻 스치기도 했는데, 만구천원이라는 가격을 입에 올리는 점원에게 곧장 만삼천원을 제시하며 기선을 제압해버린 '그 기술'은 내가 영영 익힐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것일 터. 만삼천원이라는 가격의 출처, 그러니까 이불집 점원을 단박에 제압한 그 가격의 출처는 인근 미용실 아주머니로부터 들은 정보에 연유했던 것인데, 그 아주머니가 산 여름 이불이 참으로 '까실까실'하니 덮기 좋더라는 것, 아울러 '언니 만삼천원 이상을 부르걸랑 사지 마소'라는 이야기를 '쥐고' 장사꾼들로 넘쳐나는 진시장의 지하 매장을 활보했던 것이었다. 진시장의 지하 '세계'가 경외로움으로 다가온 것처럼 얼핏 엿본 내 어머니가 속해 있는 세계의 한 단면 또한 경외로운 것이었다. 그저 내 어머니이니 경외롭게 바라보는 것일 테지만 점원들과 나눈 짧은 대화부터 별다른 힘을 쓰지 않고 이불 세 채를 만족할만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그 기술이란, 실은 '기술' 축에도 들지 못하는 일상적인 행위일 테지만 바로 그 일상의 한 단면을 보아버린 나는, 그 세계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세계와 무관하게 살 수도 없으니 멀찌기서 '경외감' 운운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정당화 해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누나의 성토를 듣고 난 후 '어떻게 하면 부모 노릇을 잘 하는 것인가?'라는 생경한 문장을 반복해서 되뇌이시던 내 어머니는 다시 매형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시곤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참을 누워 쌍욕을 내뱉으시더니 내일 오전에 병실에 가기로 된 약속을 어기겠다 다짐하곤 바로 그 말 다음에 무슨 반찬을 해가야 하나 고민을 한 뒤 다시 쌍욕을 내뱉으신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화'와 '분'에 관해, 노년의 '정서'에 대해 몇 마디를 건네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며 내 말이 맞다고 하신다. 마치 내가 뚝딱 비운 밥 한 공기를 다시 채워주시는 것마냥 내가 당신의 아들이니 내 말이 맞다는 것이겠지. 내 어머니가 하시는 말에 대해선 대거리를 잘 하지 않으시는 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뜻하지 않게 군생활의 추위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귀에 남는 것이었다. 새로 산 여름 이불을 펼쳐놓은 안방에 누워 계신 두 분을 보며 영영 알 수 없을 듯한 '노년'과 '부모'의 세계에 대해 별수없이 잠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조카의 태명이 '다복'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오늘은 초복이지만 내 조카 다복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내 누나는 노산인데다가 태아가 너무 커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를 했다. 내가 내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내 누나와는 영영 나눌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하다. 사진으로만 봐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내 조카 다복이의 탄생을 기리며, '어떻게 하면 부모 노릇을 잘 하는 것인가'라는 문장이 발아하는 세계 앞을 서성이며 몇 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