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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도서관의 아이들

by 종업원 2012. 10. 20.


아이들은 제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그렇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려 애쓴다.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해 소근소근, 그러나 그런 소근거림으론 도무지 만족이 안 되는지 쉼없이 소근거린다. 애쓴다. 펼쳐놓은 문제집은 몇 시간 동안 같은 페이지, 키득키득, 같은 웃음소리.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논다. 도서관에서. 


수영구 도서관 매점 옆엔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 같은 곳이 있다. 아이들은 거기서도 논다. 자갈을 던지며 놀기도 하고 하나의 핸드폰을 돌려가며 놀기도 한다. 열람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숨은 거칠고 귀밑머리와 뒷목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리곤 다시 '앉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근거린다. 애쓰면 논다. 학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차마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는다. 키득키득, 키득키득. 미처 자라지 못한 이 '키드'들은 어느 날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자라버릴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입을 틀어막고 웃는 키득거림에서 어떤 울음을 듣는다. 


그렇게 커버린 아이들을 하단에서 본적 있다. 금요일 밤 하단 동아대학교 아래 롯데리아에 그득하던, 덩치가 크고 눈빛이 날카로운 고등학생들이 어슬렁거리며 24시간 운영하는 그 패스트푸드점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본 적이 있다. 단박에 불량(랑)아임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육식동물과 같은 눈빛과 몸짓을 가장해서라도 자정의 도시 한복판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이 오지 않는 아이들은, 돈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가 찾지 않는 아이들은 그렇게 패스트푸드점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그곳 화장실에서 담배를 나눠 피운다. 아무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어쩌면 저 눈빛과 몸짓은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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