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복하는 생활

메모에 관하여(1)

by 종업원 2012. 12. 19.

쓰기를 일상으로 내려앉히는 연습을 해가면 갈수록 써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보다 선명하게 체감하게 된다. '쓰기'란 내 앞까지 오지 않는 것들, 왔다가 금새 사라지는 것들, 도착한지도 모르게 온 것들 쪽으로 나아가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아니 차라리 완고하게 지키고 있었던 '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그 사실을 메모를 일상화하는 연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청탁에 의해서만 글을 쓰는 습관은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쥐어짜듯이 글을 쓰는 악습으로 이어지고 그 습관의 패턴들이 가리키는 것은 제도의 단말기가 되어가는 내 글-몸이었던 것. 글-쓰기와 몸-쓰기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아버린 이상 '메모'란 그저 단상을 기록하고 아이템을 보관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메모'는 '글/몸-쓰기'의 습관을 바꾸는 실험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메모'를 부차적인 글쓰기나 미완의 글쓰기라 불러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메모를 하는 것, 무겁게 메모를 하는 것, 언거번거하게 메모하지 않는 것, '메모'를 돌보는 것. '몸-쓰기'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글/몸-쓰기의 수행으로 메모의 습관화를 실천하며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만나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