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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단상

흥건한 땀

by 작은 숲 2024. 12. 15.

2024. 12. 4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서 종종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동안 겨드랑이에 땀이 가득하다는 걸 알아차린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일거리를 쳐내려 숨가뿐 일꾼처럼, 미로를 빠져나가려 허우적대며 길찾는 사람처럼, 모두 떠난 자리에 남아 홀로 뒷수습을 하는 쓸쓸한 사람처럼 오늘도 강의실에서 남몰래 땀을 흠뻑 흘렸구나. 무대에 선 배우나 가수라면, 운동장을 뛰는 선수라면, 일터에서 몸을 바삐 움직이는 일꾼이라면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이 잠깐이라도 반짝일 수 있겠지. 겨드랑이에 흥건한 땀이 강의실 바깥에서 차갑게 식는 순간, 강의 하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안간힘이 잠시 수치스럽다. 동시에 여전히 안간힘을 쓰며 버텨내고 있구나, 무언가를 붙들려 애쓰고 있구나 싶기도 해 잠시 안도한다.

조금도 긴장을 놓지 않고, 한 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으려 애쓰는 시간. 때때로 애써 웃음을 머금은 채, 언제나 코로만 숨쉬며 천천히 말하려 하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겠다 싶을 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잇는 일을 오늘도 정신없이 했구나 싶다. ‘정신없이’는 ‘신나게’와 가까스로 이어지지만 언제라도 ‘정신 나간’으로 미끄러진다. 겨드랑이 땀이 차갑게 식으며 강의가 끝났다는 걸 선뜩하게 알린다. 아무래도 수치가 가장 힘이 세다. 긴 강의가 끝난 날 저녁이면 자꾸 와인을 찾게 되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번 학기엔 강의실에서 내어놓았던 이야기와 차마 내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잇는 살림글을 써야겠다 마음 먹은 날이 잦았다. 그러나 나조차 모르게 겨드랑이에 흥건하게 맺힌 땀이 차갑게 식으면 몸과 마음은 수치에 휩싸여 오돌오돌 떨게 된다. 얼른 집으로 가자. 아무도 없는 집으로 가자. 총총걸음으로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한 노을이 펼쳐졌다. 다음에 차분히 마주해야지, 저 노을은 다음에 누려야지 미루며 등을 돌린 채 돌아간다. 우선 이 차가운 몸과 마음을 데워야해. 정신없이, 정신 나가지 않게.    

지난 여름 오랜만에 만난 돌배와 중앙동-남포동-영도 마실하다 올려다 본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