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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글쓰기22

빈 채로 좋아하다 2023. 10. 21 작업실에서 서성이다가 마침내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안달이나서 곧장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냇물처럼, 따뜻한 봄볕이나 가을날 부는 바람처럼 느긋하게 내려앉는 좋아함을 느끼며 조금 더 서성였다. '좋아한다'는 말은 내게 금기어에 가까운데, 때때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지만 깊게 품으려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이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만큼이나 좋아하는 (내) 마음에 깊이 빠지기 쉽기 때문에 단박에 좋다 여기는 것은 거듭 의심하거나 본능적으로 그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곤 했다. 서서히 이끌리는 것에 대해선 일부러 흐릿하게 하거나 곁눈질로만 보려 애썼다. 충분히 좋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좋아하는 .. 2023. 10. 23.
길 잃기와 살림 잇기 2023. 5. 15 사람들을 피해 송도 해변가 주변을 바장이며 종일 걷(고 헤매)다가 돌아와, 밥을 지어먹은 후에 짧은 글을 쓰곤 했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걸음 뒤에 남은 찌끼 같은 글이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한 하루가 아닌 쓰지 않기 위한 하루라 여기며 지냈던 나날이었다. 그곳이 어디일지 뚜렷하게 알지 못했지만 ‘여기가 아닌’ 바깥으로 나가보려 무던히도 애썼던 쓸모 없는 걸음이 쌓여 갔다. 낯선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보면 막다른 골목이어서 한참을 돌아나와야 했고 산책로를 걷다가도 어느새 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어느새 숨가쁘게 산속을 헤매곤 했다. 길을 잃었을 땐 덩그러니 버려진 채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초연한 느낌과 서식지에서 벗어난 들짐승처럼 다급한 호흡이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2023.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