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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길 잃기와 살림 잇기

by 종업원 2023. 8. 6.

2023. 5. 15

 

사람들을 피해 송도 해변가 주변을 바장이며 종일 걷(고 헤매)다가 돌아와, 밥을 지어먹은 후에 짧은 글을 쓰곤 했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걸음 뒤에 남은 찌끼 같은 글이었다. 무언가를 쓰기 위한 하루가 아닌 쓰지 않기 위한 하루라 여기며 지냈던 나날이었다. 그곳이 어디일지 뚜렷하게 알지 못했지만 ‘여기가 아닌’ 바깥으로 나가보려 무던히도 애썼던 쓸모 없는 걸음이 쌓여 갔다. 낯선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보면 막다른 골목이어서 한참을 돌아나와야 했고 산책로를 걷다가도 어느새 길은 온데없데 없이 사라져 나는 숨가쁘게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길을 잃었을 땐 덩그러니 버려진 채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초연한 느낌과 서식지에서 벗어난 들짐승처럼 다급한 호흡이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나오거나 산속을 헤매던 걸음은 길을 찾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길을 지우기 위한 까치발에 가까웠다. 그리도 오래 걸었던 건 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을 잃기 위해서였던 게 아니었을까.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목에서 마주한 송도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닌 환하고 생생한 동네였다. 허술한 살림살이를 매만지며 밥을 지어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바깥으로 나가려 할수록 돌아와 마주한 단촐한 살림은 뚜렷해졌다. 몸과 마음에 더께처럼 내려앉은 익숙하고 친숙한 길을 지워보려 했던 걸음, 길 잃기를 위한 걸음이 매일 마주한 건 한줌도 되지 않는 살림이었다. 

찌끼 같은 글은 (잃어) 버릴 수 없는 살림 주변을 바장이며 머물었다. 둬도 그만이고 버려도 그만인 것들, 써도 그만이고 쓰지 않아도 상관 없는 글을 매만졌던 손길이 계속 바깥으로 걸을 수 있게 했다.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매일 멀-리까지 나가 헤맬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반딧불이 같은 희미한 살림(빛)이 있었기에 오늘 길을 잃어도 괜찮았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어먹는 나날을 반복하는 것이 ‘싸움’처럼 이어졌다. 이겨야 하는 상대가 있다기보단 중단하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싸움은 어느새 ‘운동’이 되어갔다. 살림과 함께 하는 운동, 살림과 어깨동무하는 운동에 나는 ‘맨손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살림을 꾸리는 이라면 누구나 맨손운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홀로 걷고 살림을 매만지며 맨손운동을 하는 동안 어딘가에서 또 다른 맨손운동을 하고 있을 사람을 떠올렸다. 밥을 짓기 위해 켜는 가스불과 글을 쓰기 위해 켜는 스탠드 불빛이 오늘도 살림빛을 지켜내며 이어가는 운동이지 않을까. 때론 그런 생각을 하며 홀로 하는 맨손운동이 세상 여기저기서 오늘을 지켜내고 있는 살림살이와 어깨동무하려는 애씀이라 여기게 되었다. 사람들을 피해 바깥으로 걸었지만 살림을 통해 다시 사람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닥에 손을 짚고 온몸을 버텨내는 단조로운 형식을 반복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기댄 살람살이와 됨됨이가 뻔한 표정과 함께 선명하게 드러났다. 종일 걷다 돌아온 날에 밥을 지어 먹고 썼던 글은 죄다 생활과 살림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라는 사람과 고만고만한 일상을 생활글에 기대어 들여다보노라면 단박에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긍정할 수도 없는 오밀조밀하게 엮인 살림살이에 새겨진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내 몸에 얹혀 있는 습관과 버릇에서부터 짐짓 모른 척하며 품어 온 희망에 이르기까지, 나조차 모르는 사이 깨알같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살림에 새겨진 흔적과 기록이 남긴 궤적들. 그 문양이 희미해지기 전에 옮겨 적었던 글이, 마치 불씨를 옮기듯이 이어갔던 글씨가 생활글쓰기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구원이 아닌 회복을 위해 매일매일 이어졌던 (애)씀 운동. 각자가 맨손운동으로 지켜내는 살림살이가 세상 한쪽을 지켜내고 있음을 예감하며 썼던 시 한 편을 아래에 옮기기 위해 다시 쓴다. 

 

맨손운동


두 손을 바닥에 붙이면 
저절로 몸이 낮아진다
눈을 감으면 절이 되고
눈을 뜨면 맨손 운동의 시간 

오늘 필요한 건 구원이 아니라 연료 
시간을 오랫동안 버텨낸 자리에선 
시체도 연료가 된다는데 

두 손은 바닥을 
붙들지도 떼지도 못한 채 
바닥과 함께 견디다 버티다 
세상 한쪽을 
들어 올리는 중 

바닥 힘으로
추락하지 않고 내려가며 
손바닥 힘으로
비상하지 않고 머무는 시간 

멀리까지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돌려온 
자가동력기

 

회복하는 글쓰기⏤일상을 돌보며, 주변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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