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92 기지개를 켜듯 접힌 시간을 펼쳐 2023년 하반기 주제를 ‘가난이라는 주름’으로 묶어보았던 것은 알게 모르게 접어둔 것들을 펼쳐보면 좋겠다 싶어서였습니다. 다시 펼쳐봐야겠다 싶어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두는 것처럼 기억을 접어두는 경우도 있지만 저마다가 놓인 형편 탓에, 또 갖은 이유로 접어두어야만 했던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스스로도 잊고 있던 접힌 기억을 펼쳐보는 자리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 자리를 솔직한 고백만이 아니라 탐구와 탐색도 함께 하면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 가난은 우리를 움츠려들게 만들고, 멈칫하게 하고, 뒷걸음질치게 하죠. 거기에 접힌 기억과 시간이 주름져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빈곤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가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질적인 것보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2024. 2. 24. 뒤쫓다-뒤따라가다-뒤에 서다-돌보다 ‘뒤쫓다’는 낱말을 앞에 놓아두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해요.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엔 ‘뒤-쫓다’를 “뒤를 따라 쫓다”와 “마구 쫓다”라고만 풀이되어 있습니다. 풀이말엔 나오지 않지만 ‘뒤쫓다’는 무언가를 바로 잡기 위해, (도망가는 무언가) 뒷덜미를 잡기 위해, (잘못된 무언가를) 바로 잡으려는 태도가 배어 있는 듯합니다. ‘바로 잡기’는 ‘손아귀로 움켜쥐는 일’과 이어져 있다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 낱말을 풀어볼 수 있지 싶어요. 뒤쫓는 건 바로 잡기 위해서라기보단 혹여나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놓쳐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 뒤를 쫓아 가는 것이겠지요. (바로)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깁니다. 그.. 2024. 1. 24. 살림 씨앗(3)_바람, 늘, 어린이 ㅎ : 제가 요즘에 곳간에서 나온 을 읽고 그거 때문에 ‘여행’에 심취해 있거든요. (곳간지기 : 오~~!) 뭔가 말만 나오면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바람이 ‘여행하는 숨결’이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서 이렇게 풀어봤어요. “다대포에 4월이 오면 사스레피가 내쉰 숨결과 마른 파래와 조개들이 내쉰 숨결이 한 데 어울려 봄맞이 하러 갑니다.” 제가 사는 다대포에 사스레피나무 군락이 있어요. 3월이나 4월이 되면 사스레피나무에서 작은 꽃이 피는데요, 향기가 엄청나답니다. 그래서 사스레피나무 군락과 제가 사는 집은 꽤 떨어져 있지만 바람이 불면 저희 동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벌써 냄새가 다르죠. 특히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불잖아요. 그러면 냄새를 맡게되는데 여러가지 향이 난답.. 2024. 1. 22. 낯선 고향 쪽으로⏤코로만 숨 쉬기(5) 2023. 12. 8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달려야지 싶지만 자꾸 미뤄지고, 마음을 크게 먹어야 나설 수 있는 걸 보면 달리기를 살림이라 꺼내놓을 수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애써 모른척, 마치 어제 본 동무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냥 아무렇지 않게 나가야겠다 마음 먹고 달릴 채비를 갖춘다. 어플을 확인해보니 달린지 20일이 넘었기에 오늘은 더 천천히 달려야겠다 마음 먹고 나섰다. 거리나 속도를 가늠하지 않고 코로만 숨 쉬며 비에 흠뻑 젖는 것처럼 밤공기에 몸을 내맡기며 나아간다. 새삼 나-아-가-다란 낱말을 곱씹게 된다. 달리기를 몸과 마음을 펼치는 자리라 여겨왔기에 '펼치다'란 낱말에 대해선 나름으로 풀이를 해보고 짧게나마 적어보기도 했다. 달리는 동안 드문드문 '나아가다'란 낱말을 떠올리게 되는 때.. 2023. 12. 24. 『대피소의 문학』 저자 인터뷰 문학의 역할이나 소명에 대한 기대가 회의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대피소’라는 긴급한 장소와 ‘문학’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왜 ‘대피소의 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지요? 저뿐만 아니라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무기력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한동안 ‘구조 요청’에 누구도 응답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속에서 지냈습니다. 참사의 사회적 의미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닌 참사 현장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현실’과 ‘현장’의 온도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깥을 향해 도움을 구했던 이들이 외려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해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가령, 유가족들의 투쟁이나 참사 현장에 관한 증언)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무기력이야말로 재난 시스템이 .. 2023. 12. 7. 달리기 살림⏤코로만 숨 쉬기(4) 2023. 11. 16 작업실이 춥고 몸도 좋지 않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카파드래곤’에 들러 원두를 샀다. 집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기에, 혹여라도 커피가 없어 작업이 중단될까 오늘도 괜한 염려를 하며. 지난번에 구매했던 원두 두 종류에 대한 후기를 전하며 신맛이 나는 원두를 내릴 때 부딪친 문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사장님 또한 퇴근을 준비하는 듯했지만 이내 신맛 나는 원두를 갈아서 커피 한잔을 내려주신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동안 그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은 20g이 한잔 양인데 이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원두가 부풀어오르는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내리는 게 좋은지, 신맛이 나는 원두와 강하게 볶은 원두를 내릴 때 물온도는 어느정도가 적당한지, 정해놓은.. 2023. 11. 17. 이전 1 2 3 4 ··· 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