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30 알렝 기로디, <미세리코르디아 Misericordia>(2025)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 상영 후 이어진 이지훈 선생님 강연이 더 깊이 남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알렝 기로디를 만난 날로 기억될 듯하다. 영화는 (자기) 집에 있지 않고 눈뜨자마자 다른 이들의 집엘 방문하거나 해가 질 때까지 산책하는 떠돌이 '제레미'를 따라다니지만 길목마다 마주치는 필리페 신부님 또한 이 영화를 이끄는 중심 인물이다. 쉼없이 경계선을 타고 다니는 제레미의 걸음뿐만 아니라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작은 마을 곳곳을 바장이며 살뜰히 보살피는 필리페의 걸음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 더, 졸림과 지루함 없이 성사되는 만남은 없다. 책도, 영화도, 사람도 지루할 틈이 없는 마주함에만 이끌릴 게 아니라 지겹고 더딘 마주함을 견디며 자란, 혹은 먹이고 키운 관계를 가꾸어나가는 일이야말.. 2025. 7. 20. 글쓰기, 머물기, 되풀이하기 ‘새로움’을 쫓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새로움을 피할 수 없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새로움에 이끌리고, 새로움에 붙들리며, 새로움에 끌려 다닙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새 것 아래에선 숨이 가빠집니다. 처음 맞이하지만 익숙한 듯 잘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틈을 주지 않습니다. 가만히 멈춰 서서 곰곰 생각해봅니다. 예전엔 호주머니에 뭔가를 잔뜩 넣어 다닌 탓에 뒤적여보면 늘 뜻밖에 것들이 나오곤 했는데, 요즘은 낱말을 되뇌어봅니다. 낱말을 떠올리거나 마음에 품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낱)말엔 이미 많은 것이 담겨 있고 이미 많은 것이 풀려 있습니다. 새로움이라는 낱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새롭다는 건 나쁜 뜻일 까닭이 없는데, 왜 자꾸 그 .. 2025. 7. 6. 지나가다 2025. 5. 28작업실에 가지 않은 날이면 서재에 앉아 창밖에 쏟아지는 볕을 바라본다. 건너편, 들어갈 수 없는 화목한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종알종알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집, 티격태격 작은 부대낌 사이로 웃음이 흐르는 집. 언젠가 방문을 열어두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화목은 집에 다 담기지 않는 웃음소리처럼 바깥으로 흘러넘치곤 하지만 눈길과 손길로 꾸리는 살림은 서로를 감싸기에 내내 집에만 머무르고 싶게 한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내게도 화목했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에 고등어조림을 먹던 날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었던 양념통닭, 저녁 대신 만들어주었던 떡볶이, 어린이날에 먹었던 짜장면, 한여름 마당에서 구워 먹었던 삼겹살, 그리고 3교대 근무를 했던 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뒷산 .. 2025. 7. 4. 덩그러니 2025. 5. 24한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하루종일 그이를 생각하다가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난다. 그럴 때 하루는 너무 길지만 한달은 너무 짧다. 1년 6개월 전쯤에 달리는 길에 챙긴 신용카드와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카드를 어딘가에 떨어뜨렸다는 걸 집에 도착할 때쯤 알아차린 적이 있다. 달리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그 카드를 허리춤에 넣어두었는데 지퍼를 잠그지 않았나보다. 두 카드 모두 재신청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달렸던 길을 훑으며 다시 되돌아 갔다. 20분쯤 지나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먼길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축쳐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계속 걸었다. 택시를 타고 달렸던 곳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집.. 2025. 6. 1. 어느새 오솔길에 들어선 모두―113번째 <문학의 곳간> 뒷이야기글 비, 상현, 아름, 승리, 지원 그리고 대성. 이렇게 여섯이서 113번째 을 열었다. 비는 이 모임을 시작했던 2013년 7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다. 에 비가 없으면 뭔가 이상하다. 상현은 2021년 이맘때부터 모임을 함께 열고 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오가던 이 같다. ‘숨 쉴 틈’을 찾아 에 온다는 아름은 2018년 (권여선) 모임에 첫 걸음을 했고 이어서 으로 미끄럼을 타듯 즐겁게 넘어왔다. 승리는 2023년 화명동 ‘무사이’에서 열었던 글쓰기 모임에 이어 매달 빠짐없이 을 함께 열고 있다. 지원은 진주에서 열었던 글쓰기 모임, 그 모임을 바탕으로 함께 펴낸 『살림문학』과 이어져 작년 12월에 첫(큰!) 걸음을 한 후, 이달에도 합천에서 차를 타고 먼 걸음을 해주었다. ‘우린’ 꽤나 오래 만난 .. 2025. 5. 13. 눈을 감고 2025. 3. 12늘 같은 곳을 달려도 달리는 몸과 마음이 다르고, 부는 바람결과 풍기는 냄새가 다르고, 별빛과 밤구름도 같은 적 없으니 오늘도 다른 길이다. 가볍게 입고 바깥에 나설 때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순간은 언제나 좋다. 발을 내딛을 때 넉넉하게 받아주는 땅과 가볍게 튕기며 저절로 나아가는 발바닥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맞춰서 손뼉을 치는 듯해 발구르기도 신이 난다. 두어달 멈췄던 세미나를 다시 연 날, 발제는 끝냈고 봄밤에 부는 바람은 선선하고 냉장고엔 어제 만들어둔 음식도 남았으니 반병쯤 남은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세미나를 마치고 한결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달리러 나섰다. 오늘밤 나는 누가 뭐래도 넉넉한 사람이다.다대포 바닷가를 곁에 두고 달리다가 문득 눈을 감고 달려보고 싶었다... 2025. 3. 22. 이전 1 2 3 4 ··· 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