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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도둑 고양이와 함께 살기, 곰팡이에게 안부를 묻기

by 종업원 2013. 9. 13.

2013. 9. 13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쓰레기종량제 봉투 속에 있던 닭뼈를 고양이가 파헤친 것이다. 다 튿어져 널부러져 있는 종량제 봉투 주위로 씹다가만 닭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잠깐 그 잔해들을 내려다볼 뿐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여러번 씹히고 씹혀 앙상하게 남은 닭뼈와 옆구리가 터진 종량제 봉투를 어쩌지 못했다. 새벽,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며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닭뼈의 잔해들을 다소 신경질적인 몸놀림으로 차버렸다. 닭뼈들은 흩어졌지만 잠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관문 앞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구기는 어렵지만 잠깐만 손을 놓아도 속수무책으로 마모되고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버리는... 살림들. 쓸고 닦고,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붙이고 애를 써서 만든 장소들이 잠깐의 부주의에도 속절없이 쇠락해버린다. 긴 시간에 걸쳐 손수 가게를 꾸미고 가꿔왔던 한 청년 사업가가 여행 후 싱크대에 가득 번져 있는 곰팡이들을 보고 가게를 팔아버리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째서 우리가 일구고 가꾸는 곳은 이리도 쉽게 몰락해버리는가, 잠깐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단 하루도 쓸고 닦지 않으면 폐허가 되어버리는 위태로운 곳에서 우리는 산다. 우린 '곰팡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잠식한다고 해도 망연자실해서는 안 된다. 싱크대에 가득 번져 있는 곰팡이를 보고 애써 가꿔왔던 가게를 팔아버리기로 결심한(가게를 팔어버린 데는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그 청년 사업가가 다시 만나게 될 곰팡이 앞에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려진 곳을 찾아내어 그곳을 치우고 가꾸는 손길들이 있다. 힘들어 잠깐 쉬는 사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곳은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몰락할 것이다. 그때 자신이 쌓아올린 왕국과 함께 몰락 해버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가 나눠가졌으면 한다.

작년 8월쯤,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모든 옷들 사이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곰팡이가 핀 것을 뒤늦게 확인한 새벽, 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아침해가 뜰 때까지 빨래줄에 옷들을 걸어두고 할 수 있는만큼 곰팡이를 털어내었던 외롭고 슬픈 기억이 있다. 그 덕에 올 여름은 주기적으로 곰팡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그럭저럭 잘 넘어간 듯하다.

내 주변에 산재해(!) 있는 가난한 친구들은 돈버는 데 관심이 없다. 늘 돈 때문에 쩔쩔매지만 어찌된 일인지 돈이 안되는 일에만 열심을 부린다. 증권가의 매니져나 메이져리그의 일류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이들이 단 한순간 털썩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자신이 애써 가꾸었던 장소와 관계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잦다. 그럴 때 나도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싶어진다. 함께 서야지 도미노처럼 함께 주저앉서는 안 된다. 도둑 고양이를 내쫒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그리고 곰팡이가 없는 곳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곰팡이들에게 안부를 묻는 기술을 익히고 그 경험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저녁, 생활기획공간 통의 3주년을 기념하는 집담회의 주제는 <오래 오래 재밌게 놀 수는 없을까?>이지만 처음 만나게 되는 이들이 많을 그 집담회를 생각하며 나는, '도둑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곰팡이에게 안부를 묻기' 따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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