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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음악가라는 동료(1)

by 종업원 2013. 9. 15.
2013. 9. 15

오전 10시, 부산역에서 음악가 김일두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통화 중이었다. 반갑게 다가가 말없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천천히 나를 돌아보고는 전화를 급히 끊고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3분간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헛개차'를 따서 내게 먼저 건냈다(바로 이게 김일두 식 인사라는 것을 그를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은 안다. 내가 먼저 알아봐도 언...제나 그가 더 환대한다). 어제 부산대 앞 축제에서도 나는 그를 먼저 알아보고 어깨를 감싸는 것으로 4개월간의 인사를 대신했다.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것은 별 볼일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늘 내가 먼저 그를 알아보고 다가가 인사를 건네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는 내게 먼저 인사하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도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가는 음악가를 먼저 알아보고 다가가 인사를 건네지만 문학가'들'은 왠만해서는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대개는 모른척 지나가거나 모른척 하고 지나가주기를 바란다. 운수없게도 눈이 마주치거나 모른척 할 수 없을 때 안면근육의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의 표정으로, 마치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최소한의 인사만을 건네고 황급히 지나친다. 먼저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비평가의 사명이자 유일한 미덕 중의 하나임을 알겠다. 알지만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호의를 가지고 먼저 말을 건냈음에도 불구하고 터무니 없이 무례한 태도로 나를 공격해온 이들에 대한 기억을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 무엇보다 나는 문학가를 거의 만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애써 피하지 않아도 내 삶의 반경에선 왠만해서 그들을 만날 일이 없다. 그런 탓일까. 근래엔 음악가들이 마치 내 동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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