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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노동

익숙해서 가난한 발걸음-<우묵배미의 사랑>의 민공례가 홀로 찾았던 비닐하우스

by 종업원 2014. 2. 1.


2014. 1. 22


배일도와 민공례의 새살림이 '새댁'(유혜리는 극중 이름이 없다)에게 발각된 후 이 둘은 불가피하게 이별을 하게 된다. 배일도는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지만 민공례는 '차마'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살아간다. 몇 계절이 지난 후 민공례로부터 전화를 받은 배일도는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가고 민공례는 여전히 아름답고 다소곳한 자세로 배일도를 맞는다. 이 둘은 마치 어제처럼 익숙한 암호를 주고받으며 그간의 시간을 단숨에 극복하는 듯보인다.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떠오른 기획안을 정리해 카페에 올리다 배일도가 식탁 아래 민공례의 발을 지긋이 밟으며 애교와 익숙한 신호를 동시에 보내고 있는 클로즈업 쇼트가 새삼 사무치게 떠올랐다. 흰 양말에 랜드로버 구두를 신고 있는 배일도와 슬리퍼에 양말을 신고 있는 민공례의 발이 무척 대조적이다. 그리고 바닥엔 누군가가 피다 버린 담배 꽁초들이 널부러져 있다. 이를 단순히 '모퉁이 사랑'의 정겨운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민공례의 핼쑥한 얼굴보다 그 슬리퍼가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그 시간들이 말이다. 그리고 이 가난한 두 연인은 사랑을 속삭이던 '우묵배미 비닐하우스'로 간다. 간곡하고 절실한 정사를 나누려는 찰나, 민공례는 배일도에게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있잖아요, 나. 여기 이 자리에 몇 번이나 왔다 간 줄 알아요? 길가다 지호 아빠 비슷한 남자 뒤꼭지만 봐도 가슴이 툭 내려앉을 지경이었으니까 말이에요.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죠. 미라 같은 거 상대가 안 돼요. 미라가 다 뭐에요, 주인집 전화벨에도 깜짝 깜짝 경기를 일으킬 정돈대요, 뭘. 하루 한 끼 제대로 챙겨먹은 줄 알아요? 세상에 이런 병신 같은 여자가 또 어디 있겠어요. 머리털이 다 빠져 나갈 정도로 말이에요. 난, 난 전체를 기댔는데, 애까지 팽개치면서, 하지만, 하지만 다 헛깨비 노름이었어요." 


민공례가 누구도 오지 않을 '우묵배미 비닐하우스'를 몇 번이고 찾아간 것처럼 아직 오지 않은 그 누군가를, 그 어떤 시간을 그리며 폐허가 되어버린 ‘비닐하우스’를 찾아가는 가난한 발걸음들을 떠올려본다. 비참함으로 기울어져 있는 이 세계에서, 속절없이 축소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익숙하기에 한없이 가난한 그 발걸음은 어디를 향해야 하고 또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