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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노동

허리숙여 절하는 이유

by 종업원 2017. 9. 9.

2017. 6.20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의 1952년작 <번개稲妻>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은화일지도 몰라 바닥에 떨어진 병뚜껑을 줍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딸로부터 왜 나를 낳았냐고, 왜 여러 남자와 결혼을 했냐고 따지는 말에 너희들을 키우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었었다고,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너마저 어떻게 내게 그럴 수가 있냐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한 뒤, 어머니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찐빵을 챙겨가도 되겠냐고 딸에게 되묻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혹여나 은화일까 싶어 어머니는 갑자기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집어올린다. 기대와 달리 은화가 아니라 병뚜껑이다. 손바닥에 쥐어진 것이 쓸모없는 병두껑일지라도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줍는 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지켜온 이력 없이는 불가능 행위다. 우리는 생활의 현장에서만 쓸모와 무관하게 허리 숙여 절을 한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속 여성들 대부분은 세속의 풍파에 허리가 꺾여 신음하지만 기꺼이 허리 숙여 절을 하며 생활을 지탱하는 힘(力)으로 세상 모든 곳을 자신의 '생활 현장'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