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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노동

연인이라는 어리석음으로 잠깐 켜는 희미한 등불-<부운浮雲 Floating Clouds>(1955)

by 종업원 2014. 9. 28.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 


가난한 연인들, 어리석은 연인들. 연인이라는 어리석음. 한 때 달고 맛있게 먹었던 열대과일과 같은 시간. 도피 여행 중 그들처럼 동남아 시절을 보낸 여관 주인의 물음. "두리안 먹어봤지요?" 카메라는 1초정도 유키코의 흔들리는 표정을 담는다.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그 표정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열대과일이 없는 세계에서 열대과일을 찾고 있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봤기 때문일까.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세계에서, 한사코 다른 이를 쫓는 남자(도미오카)와 불가능한 사랑을 쫓는 여자(유키코)는 가끔 함께 길을 걷는다. 눈앞의 모퉁이만 지나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없는 길을, 폐허가 되어버린 세계를 이 두 사람은 서로에 기대어 쓸쓸하고 소중하게 걷는다. 아주 잠깐만 허락되는 동행. 연인이라는 어리석음으로 잠깐 켜는 희미한 등불, 흔들리는 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