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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비평의 언덕(1)-산 옆에 언덕 만들기

by 종업원 2014. 2. 15.

2014. 2. 13

 

임권택x101 ;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http://www.kmdb.or.kr/column/lim101_list_view.asp?page=1&choice_seqno=24#none) 연속 기획 중 <임권택이라는 상상의 공동체-혹은 영화라는 우정의 이름으로 나눈 대화(1)>을 탐복하며 읽었다. 오랜 지기가 나누는 대화는 내내 빛이 났으며 이들은 그 빛을 임권택이라는 감독을 조명하는 데, 되비추는 데 아낌이 없다. 아낌없이 빛내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되비춘다는 것. 내게도 그렇게 아낌없이 조명하고픈 큰 산이 있는가,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는가. 이 물음은 자문이 아니다. 그래서 반복할 수 있다. 기꺼이, 신명나게 반복하고 싶다.  

 

 

 

 

          

 

 

 

1. 

정성일과 허문영의 대화. 질문과 답변은 각자가 걸었던 길을 복기 하기보다 가보지 않았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동력(용기)으로 작용한다. 임권택이라는 큰 산을 사이에 두고 이 둘은 그 산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 산의 존재를 언제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올랐으며 어떤 샛길들을 감추어놓았는지를 과감하게 묻고 답하면서 ‘언덕'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시 반복하자면 이 두 비평가는 임권택이라는 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무등을 태워주며 비평의 언덕을 만들어간다. 우정의 언덕. 산 옆의 언덕들. 언덕에 오르면 한층 높아진 시선 덕에 산이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외려 보다 풍성해지고 충만해진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자. 그 산에 가고 싶어진다. 산 옆의 언덕이 우리를 산으로 이끈다. 비평의 언덕이 그 일을 한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진다. 우정의 대화가 우리를 이끌고 있다고. 

 

 

2. 

허문영을 향한 정성일의 질문은 임권택이라는 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새로운 출입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그는 허문영이라는 파수꾼의 이력을 꼼꼼히 살피고 산 주변을 오르락 내리락 해온 한 파수꾼을 조명함으로써 산을 영사(映寫)하려고 한다. "시네마-피플 떼끄” 길은 매번 두 갈래다선택과 실패비평가는 언제나 두 가지의 질문(내부와 외부)과 해석(가능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그것은 매번 실패할 수 있는 위험(가능성)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는 보법(步法/譜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실패(가능성)의 보법이 비평가의 동력 장치다이어지는 정성일의 질문은 선택과 확신의 연쇄라기보다는 선택과 실패의 연쇄다(실제 이 두 사람의 대화는 궁합이 무척이나 잘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끊임없이 쏟어져나오는 질문과 답변을 찰떡궁합이 아닌 어긋남의 긴장으로 감각한다). 정성일은 허문영의 자리에 서서다시 말해 비평(우정)의 언덕 위에 서서 ‘다시’ 임권택을 본다언덕을 거쳐(통해협곡이 많고 유독 울퉁불퉁한 산(임권택의 필모그래피만큼 울퉁불퉁한 한국영화감독이 또 있을까!)으로 향한다.


3. 

언덕을 만드는 것은 산 정상에 당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정상이라는 진리를 포기 하는 순간 ‘산’을 ‘산’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비로서‘산’을 오를 수 있게 된다언덕을 만든다는 것은또 그 언덕 위에 선다는 것은 하나의 진리와 기꺼이 싸운다는 것이다언덕은 산을 닮아가는가그렇지 않다언덕은 다만 산에 가까워진다비평은 산 옆에 언덕을 만드는 일이다대화라는 주고받음을 통해 쌓는 언덕그러므로 '비평가들의 대화’란 표현은 동어반복이다비평은 대화를 통해서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나는 ‘비평가들의 대화’라는 동어반복적 표현을 조금 더 쓰고 싶다. 그것이 오류라 할지라도 조금 더 동어반복 하고 싶다. 그리고 가끔 끝없이 반복하고 싶다.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또 다시 보는 심정으로 대화 하고 싶다. 그렇게 기꺼이 반복하며 커다란 산 옆에 너끈히 대화의 언덕을, 다름 아닌 비평의 언덕을 만들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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