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인용

"사람을 만난다는 것"

by 종업원 2014. 8. 30.

 

"(…) 이상하게도 tv 카메라를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음이 나와서 떨리지도 않고 기분이 좋고 그랬는데 라디오는 정반대였습니다. 라디오를 통해서는 어쩐지 마음이 드러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인거 같은데요, 그게 제가 가까운 사람에게는 속이야기를 잘 털어놓지 않는 성격이어서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스튜디오 안에 들어오면 수다쟁이가 되어 버렸죠. 마치 매일 만나는 친구처럼 항상 할말이 많았구요, FM방송이니까 말은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해도 왜 그렇게 말이 많이 나오는지, 그러면서도 방송 끝나면 항상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는 거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던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 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했을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야기를 해야겠다' 왠지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숨막힐 거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거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아마도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DJ는 프로그램과 연애를 한다, 그런 이야기에 실감하지 못했는데 정말 제가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런 것을 실감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랑에 취해서 그동안 결혼이란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참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여러분께요. 무엇보다도 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많은 사랑을 받았구요, 또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여러분들의 고민, 살아가는 이야기들, 나랑 다른 생각들,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또 예전에 산발적으로 봐왔던 영화책들도 이제 좀 더 체계를 세워가면서 보게 되었구요, 영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영화에 대해서 또 음악에 대해서, 즐겁게 아주 뜨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저는 좋았는데 여러분은 느끼하고 싫고, 참 그런 시간 빨리 가서 좋다, 뭐 이렇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저에 대해서 비판도 해주시고 비난도 해주신 분들, 충고 조언 해주신 분들, 격려와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흐흑…) 2년 반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많났구요 (…흐흑…) 소중한 인연을 맺은 거 같습니다. 자, 이제 새로운 진행자가 여러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배유정 씨라고 아마 제가 부족했던 점들을 다 매워줄 수 있는 그런 분 같아요. 아주 능력 있고, 참 좋은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여러분의 밤에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정말로 편안한 밤을 만들어드릴테니 여러분도 <FM 영화음악>을 계속 해서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 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1995년 4월 1일 마지막 방송에서 DJ 정은임 씨의 코멘트를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