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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용

열려라, 참깨!

by 종업원 2015. 1. 6.

2015. 1. 5



"나의 내적인 독특함을 요구하는 것으로서의 '계시', 그것이 '계시'가 의미한다고 할 때의 의미의 생성 그 자체인 것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다수성이 '절대적 진리'가 충족되기 위한 조건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그 독특함을 통해 진리의 독특한 상의 계시를 담당하고 있으며, 진리의 상들 중 몇 가지의 어떤 개인이 인류에게 결여되어 있어서는 결코 계시되는 일이 없는 그런 것이다."

―임마뉴엘 레비나스, <<말씀의 저쪽-탈무드 독해와 강연>>(우치다 타츠루,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이수정 옮김, 갈라파고스, 2013, 61쪽에서 재인용)



계시(말씀)란 명령이되 복종과 굴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소환(명령)일 따름이다. 와서 이것을 받아라(읽어라), 그리고 전하라(나누라)는 명령. 말하자면 동굴 앞에서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는 이는 동굴 안의 보물을 차지하게 될 소유자가 아니라 동굴의 내부를 봐야(책임져야)만 하는 소환된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유명한 주문의 외침은 거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동굴 앞에 선 이는 '외치는 이'가 아니라 어떤 '부름을 듣는 이'로 말이다. 텍스트를 읽는 이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한 권의 책'의 '의미'는 그것을 '읽음'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면모"(130쪽)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직 그 앞에 서서 부름에 응답한 이가 없었기에 열리지 않은 동굴이 있다. 그 누군가가, 바로 그 한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리가 있다. 진리의 개시 가능성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유일무의성과 분리될 수 없다. 아직 내(네)앞에 도착하지 않은 너(나)로 인해 개시되지 못한 진리와 진실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열려라, 참깨!"는 차라리 소환명령에 대한 응답이라고 해도 좋다. 가로막힌 동굴 앞에서, 문조차 보이지 않는 막중한 바위 앞에서 "열려라, 참깨!"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우치다 타츠루는 '스승-제자론' 위에 세워두고 있다.  



'누군가의 제자이다'라고 하는 것은 스승의 전지함 앞에 고개 숙이고 침묵하는 것도, 스승의 말씀을 그대로 되뇌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승과의 '대화적 교류'를 통해,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도 '그 이외의 누구에 의해서도 말해지는 일이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호출받는 일이다. (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