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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장보기(1)-생활의 두께

by 종업원 2014. 10. 15.


2014. 10. 15



마땅히 장 볼 건 없었지만 ‘우리 마트’로 향했다. 가방 속엔 장바구니 두 개가 곱게 접혀 있으니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다. 송도에 이사온 이후 외출이 있는 날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을 보고 있다. 처음 ‘우리 마트’에 온 날 가장 먼저 6개 짜리 생수 가격을 확인했다. 남천동 ‘빅 세일 마트’보다 저렴한 생수가 있다! 두 개 묶음으로 판매되는 CJ의 어묵은 400원정도 더 비싸다. 4개 묶음 햇반도 700원가량이나 더 비싸다. 양파도, 땡초도, 마늘도 모두 2-300원 가량 더 비싸다. 헌데 640ml 맥주는 200원이 저렴하다. 그렇게 이것 저것, 하나 하나 살펴보며 30분 정도 마트를 배회하니 '이상한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나조차 모르게 각인되어 있던 생활 필수품(!)의 가격이 이사 온 새 동네의 마트에서 하나씩 살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사 온 동네 마트에서 마주하게 되는 낯섦과 생활의 낙차가 그간 방기하고 있던 생활의 감각을 깨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슈퍼를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생활 재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천천히 알게 된다. 웬만해선 변동이 없을 거 같은 바코드로 표기된 물품들의 가격이 매일매일 조금씩 바뀐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천동보다 몇백원 더 비쌌던 양파도, 땡초도, 마늘도 모두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했다. 송도로 이사 온 이후로 열심히 잡곡밥을 지어 먹고 있어 햇반을 한번도 먹지 않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천원 가량 할인된 3,450원에 나와 있어 긴급할 때 쓸 요량으로 한 묶음을 구입하고, 일전에 늘 먹고 싶던 순대볶음을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 처음 사본 피망 한 봉지(2개)가 그땐 2,340원이었는데 오늘은 980원이어서 냅다 두 봉지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피망과 함께 볶을 어묵 한 봉지를 사고 맥주 한병과 비스켓 하나를 샀다. 얼마 전에 처음 구매 했던 굴소스와 마늘, 땡초, 양파, 새송이버섯을 함께 넣고 볶아봐야겠다. 저녁이라면 본가에서 얻어온 고추가루 반스푼을 넣어도 좋겠다.  

암남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티마트’엔 산책할 때마다 들러본다. 과일도 야채도 ‘우리 마트’보다 비교적 비싸다. 묶음으로 나온 상품 중에 조금 저렴한 것이 한두 개 보이고 땡초와 마늘이 2-300원 가량 저렴하다. 하지만 상품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간이 냉동 식품 또한 2-300원 가량 저렴하고 무엇보다 남천동 ‘빅 세일 마트’에서 구매해왔던 저렴한 계란 브랜드가 ‘우리 마트’에 없어 섭섭했는데 이곳엔 있다! 사지도 않을 물품들의 가격으로 천천히 눈으로 훑으며 한참을 둘러본다. 시합이 없는 날, 그라운드를 천천히 밟아가며 흙의 방향이나 잔디의 상태를 점검하는 선수의 마음으로. 200원, 혹은 50원의 차이, 그런 미세한 생활이라는 결의 방향. 동네 슈퍼를 산책 하듯 배회하는 것은 ‘어디가 더 싼가’를 비교하고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200원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매일 매일 장을 본다는 것은 결국 200원이라는 강도로 생활의 온도를 매순간 감각한다는 것이다. 200원이라는 강도, 200원이라는 생활의 두께. 장보기는 바로 그런 생활의 감각을 지켜나가는 일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하고 있던 상품의 가격이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생활의 감각임 알게 된다. 일상적인 구매 목록에 다른 품목이 추가 되고 마트에서 시장으로 동선이 확장 될 때 내 생활의 범주와 감각 또한 더 다채로워지고 한층 더 섬세해질 것이다. 그렇게 매순간 200원의 강도로, 200원이라는 연약하지만 성실하고 섬세한 두께로 생활을 감각하고 인지하고 발견하고 사고한다는 것이 생활 밖에 없다는 가난함 속에서 생활의 감각과 유리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애써 견지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힘겹게, 믿어보고 싶다. 200원이라는 생활의 두께, 아니 그런 생활의 더께를 매만지며 이곳, 이사온 동네 마트 안을 한번, 휘-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