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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오늘을 향해 도착하고 있는 기운

by 종업원 2015. 1. 20.

2015. 1. 20

 

 

중앙동에서 세 통의 편지를 전해 받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향해 오고 있던 편지, 선물, 기운. 2014년부터 2015년을 향해 열심을 다해 도착하고 있는 것. 매일매일 정성을 다하는 것이 때론 막연하고 추상적인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럴 수 있는 것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누군가와 무언가를 맞이 하기 위해 마중을 나가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새벽, 두 달 전 친구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쓰면서 기운을 내었고 또 쓰면서 위로가 되었던 이 편지가 같은 날에 씌어진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보낸 것들, 누군가가 누군가를 향해 가고 있는 길. 그 누군가라는 자리가 무척이나 넉넉하고 풍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저마다에게 허락된 슬픔과 우울의 동굴. 그 안에 들어가야할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빨리 나갈 수 있게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 일일텐데, 그 동굴 안에서 바깥을 향해 이리로 들어와보라고, 어서 들어오라고 제촉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판 깊고 어두운 동굴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이란 무거운 어둠과 지독한 슬픔밖엔 없을 텐데 그걸 보라고, 자, 이것 좀 보라고 하는 일이 '우리의 빛'을 좀먹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냥 즐거운 모습으로 있을 수도 없지만 주변을 살피며, 마음속으로라도 염려하며 지내는 것이 정말 재활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재활'은 홀로 회복하는 게 아니라 비로소 곁을 인지하게 되면서, 바로 그 힘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너를 통해 배우고 또 알게 된다. 다시(再), 활성화되는 일(活)이 재활임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의심할 바 없는 믿음으로 나에게 의탁하지 않고 한발 물러나 믿음의 기운을 전해주는 네가 감사하다. 때때로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 있어도 네가 내게 이런 저런 말을, 한발짝 물러나 이야기해줄 때면 난 아무런 섭섭함도, 아쉬운 일도 없어져.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그게 '기운'이라고 생각해. 기운을 주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기운이란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힘으로 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몸과 마음을 잘 버텨내는 시간 속에서 맺히는 작은 열매 같은 것이니까.

그렇게 기운이라는 열매을 맺을 수 있는 뿌리의 힘을 믿음이라고 생각해. 사귐의 이력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이 깊게 자라고 있는 믿음이라는 뿌리. 설사 가로수의 뿌리가 양질의 흙이 아닌 시멘트 바닥 아래로 깊게 엉켜 있다해도 긴 시간동안 천천히 엮었을 그 관계의 직물은, 그 시간의 결들은 서로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그 어디에도 없는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보낸 메시지를 여러차례 읽고 네게 천천히 답장을 쓴다. 정성을 다하고 있는 순간. 우리가 우리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그렇게 남김없이 한 시절을 함께 살아내고 싶다.

-2014. 11. 15.

 진희에게

 

 

 

이내 씨, 2집 녹음 잘 하고 있나요?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운을 정성을 들여 차곡차곡 쟁여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성매매 스토리 공모전 북콘서트 때 이내 씨(와 나까, 혜정) 공연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늘 좋은 음악이었지만 이날 이내 씨의 노래를 처음 들은 느낌이라고 할까... 누군가의 음악을 '처음 듣는다는 느낌'은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오는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날이 제겐 무척 소중하고 뜻깊답니다. 그 소회를 후기로 써볼 요량으로 한 두자 써두었는데, 마무리 짓지 못하고 블로그에 비공개로 방치해두고 있군요. 저는 다음날 수업에서 토크 콘서트 이야기로 한 시간을 밀고 나갔답니다. 그곳에 오지도,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 그럼에도 어제의 사건을 전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거 같아요. 콘서트 이후에 저 나름으로 애써 후기를 써본 셈인 것도 같습니다. 아마도 그때 진을 다 빼버려서 이내 씨를 중심으로 하는 후기가 진행되지 못한 거 같군요.

머리를 감다가 녹음하고 있을 이내 씨 생각을 했어요. 노래를 부르고 있을 그곳. '부른다'는 것이 참 큰 힘이구나라는 생각. 그것은 무언가를 부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부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누군가가 있어, 이 세상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누군가가 있어주어 많은 이들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이겠구요. 노래를 부르는 힘이란 누군가를 부르는 힘이겠지요. 지금 곁에 없어도, 지금 보이지 않아도, 부른다는 것. 그 의지와 믿음의 힘이 세상의 모든 노래 속에 스며 있다고 생각해요. 그날 이내 씨의 노랫 속에서 저는 그 힘을 느꼈답니다. 오늘 이내 씨의 노랫 속에도 그 힘이 실려 있겠지요.

부른다는 것.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모든 노래는 합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수가 오늘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곁에서 기꺼이 노래를 함께 불러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이내 씨 곁엔 없지만 가끔 이내 씨를 생각하며 함께 노래 부르고 싶답니다.

기운 내서 녹음 잘 하고 오셔요. 

-2014. 11. 15.

 

이내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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