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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단상

수업―증여―패스

by 종업원 2015. 1. 27.

2015. 1. 27

 

겨울 계절 학기 중에 학생들과 함께 본 영상 클립 하나를 올려둔다. 이 영상을 처음 본 건 2013년 겨울이었지만 수업 자료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증여'와 관련 하여 세미나를 한번 만들어볼 요량으로 입문서격으로 읽기 시작한 우치다 타츠루와 오카다 도시오의 대담집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김경원 옮김, 메멘토, 2014)을 출퇴근 길에 맛깔나게 읽던 중에 증여와 반대급부의 인류학적 작동을 훌륭하게 표상해주는 축구를 예로 들면서 <좋은 '패서'가 되라>는 지침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오래 전에 써두었던 메모를 '현장'에서 풀어보았다. 마수미(Brian Massumi)가 축구(의 패스)를 정동(affect)이라는 힘의 흐름을 설명하는 예로 든 바 있지만 내겐 패스(pass)를 '증여'와 연결 짓는 우치다 타츠루의 언급이 보다 인상적이었다. 그건 그의 패스론이 아이디어나 이론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부터 길어올려진 경험의 사례였기 때문일 것이다. 

 

 

럭비의 패스는 상대의 골문 방향이 아니라 옆이나 뒤를 향한다. 상대 선수들에 의해 전진이 불가능해졌을 때, 바꿔 말해 길이 차단되었을 때 수평적인 패스가 없던 길을 만드는 것이다. 전진이 아닌 후진의 방식으로 동료에게 공을 넘겨주는 수평적인 패스가 적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필드에 없던 길을 만든다. 이 장면은 '증여'의 인류학적 작동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뿐만 아니라 '수업'이라는 '협력의 장', '공통의 장'을 설명할 수 있는 드문 예이기도 하다. 수업이란 결국 (없는) 길을 내는 작업이다. 오직 수평적인 '패스'만이 없던 길을 낼 수 있는 동력임을 저 짧은 영상에 기대어 잠깐 희망해볼 수 있었다. '패스'란 그저 나눠주거나 전달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패스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함께 달리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패스가 잘 이루어질 때 설사 길이 보이지 않는다해도 계속 달릴 수 있다. 잠깐 넘겨 받은 '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꺼이 넘겨주는 일과 그런 패스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에서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달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