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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단상

마지막에 하는 말

by 종업원 2017. 12. 12.

2017. 12. 12




이번 학기도 하나 둘 종강을 하고 있다. 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일러 '제자'라고 칭하는 치들을 은근히 경멸해왔다. '제자'란 '선생'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성립가능한 명명일텐데, 지금 어디에 '선생'이 있는가! 이제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이들을 일러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계면쩍고 어색하다. 늘 그래왔듯 1학년 교양 수업을 맡은 이유도 있겠지만 대체로 수업에 관심이 없고 질문을 해도 눈만 끔뻑일 뿐 입술은 요지부동이다.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상황을 별로 불편해하지도 않을 뿐더러 귀찮아 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ppt를 활용하지 않으면 집중을 이끌어낼 수가 없고 대부분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엎드려서 잠을 잔다. 흡사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읍소(!)하거나 하소연을 해도 반응이 없고 잔소리를 하면 곧장 얼굴을 지푸리면서 말없이 대거리를 한다. 학과 전공 강의실임에도 책상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앞자리를 텅 비워둔 채 모두들 구석이나 뒷자리로 가서 수업 시간 내내 자기 할일만 한다. 강의실은 언제나 불이 꺼져 있고 반갑게 인사를 해도 누구하나 답례를 하는 이가 없다. 강의실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대학 강의실에서 대화와 토론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무력하게 알게 된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강사라는 것도 알겠다. 수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잔소리를 하면서 드러나는 나의 한계도 어느 때보다 적나라 하다. 그런 부끄러움 속에서 강의를 하고 강의 준비를 했다. 강의를 한다는 행위에서 부끄러움의 자리가 넓어지니 자연스레 문제제기나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냉정해진다.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게 되고 기대 또한 없어진다. 이번 학기에 내게 상담을 (요청이 아닌)요구한 학생이 두 명 있었는데, 여느 때 같았으면 살가운 말을 건네고 메일로라도 이야기를 이어갔겠으나 한 두 차례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었음에도 '뜨거운 자아'를 앞세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이에게 수업 시간 외에 사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언급 하고 말았다.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집중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의지해 짐짓 문제가 없다는 듯 수업을 진행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만이다. 전화를 받기 위해 자꾸만 강의실 바깥으로 나가는 이에게, 깨워도 다시 엎드리는 이에게, 시종일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내 착각에 불과할지라도 잠깐 집중되는 분위기가 감지될 때 이를 놓칠 새라 힘주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쉴새 없이 쏟아내곤 했는데, 그럴 땐 마치 차력사를 동반한 엉터리 약장수의 달변을 닮아 있는 것도 같았다.  


종강에 가까워오니 성적 때문인지 포기하지 않고 했던 문제제기와 잔소리가 효과를 발휘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런 수업 분위기 속에서 5주만 더 하면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품었던 결과를 어느 정도는 기대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아마도 착각)이 들기도 한다. 종강을 할 땐 대개 말을 준비해서 마무리의 형식을 갖추곤 했는데, 이번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시간을 꽉 채워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섰다. 인사도 아쉬움도 없이. 오랫동안 '마지막에 하는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아쉬움이 주는 여운을 지속시키거나 아슴하고 애틋한 정서를 소중하게 여겨왔다. '마지막에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임을 이제서야 알게 된다. 사람살이엔 마지막에 하는 말로 바뀌는 반전 따윈 없다. 마지막에 건네는 그럴 듯한 말이나 기왕의 방식과는 다른 말은 뒤늦은 변덕에 가깝다. 마지막이란 한번 더 변덕을 부릴 수 있는 그럴 듯한 기회일 뿐이다. 매일 매일이 마지막이고, 매순간이 마지막이다. 그런 마지막의 이력이 쌓여서 최종적인 마지막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엔 아무런 말이 필요 없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인사 하나면 족하다. 마지막에 아무런 말도 필요치 않는 관계야말로 충실했던 이력의 증표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미련을 남기는 게 아니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를 조형해나가는 일. 절망적이었던 이번 학기 강의실에서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