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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하나로 만든 샘

by 종업원 2010. 4. 12.

<부산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문화 단평을 올려둔다. 편집과정에서 변형되는 글, 나의 글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최종본을 모니터로 보면서 저널적 글쓰기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한다. 올리는 글은 편집되기 전의 최초 버전이지만 모 기자에 의해 리라이팅 된 편집본을 보면서 한 두 대목 고치고 더한 판본임을 밝혀 둔다.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통의 칸은 고작 두 개에 불과 했지만 그것이 아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지독하게 편식을 하는 식성 때문이었다기보단 반찬통의 칸이 세 개나 네 개였다면 틀림없이 그 중 몇 칸은 빈 칸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맞벌이 부모님들은 바빴고, 그만큼 살림이 빠듯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시락과 함께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수많은 장르의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도시락을 먹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을니 이를테면 나의 취향(taste)은 두 칸의 반찬통이 만든 셈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늘 비슷한 재료들로 밥상을 차리지만 ‘엄마손’이라는 마법의 봉을 휘두르는 순간 밥상에는 매번 다른 음식들로 채워진다. ‘그 나물의 그 밥’이라는 시쳇말은 분명 밥상 위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거주지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도시 서민들의 삶 또한 좀처럼 바뀔 줄을 모르지만 그네들의 삶을 직조하는 생활의 매순간이 저 식탁 위의 차려진 음식처럼 뜨겁고 푸짐한 것은, 하루를 성실하게 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허기의 지복을 매 식사 때마다 누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작년에 발매된 ‘자립 음악가’ 아마츄어증폭기(Amature Amplifier)의 <수성랜드>(자체제작, 2009)를 ‘반복’해서 들으며 두 칸 밖에 없던 반찬통과 비슷한 재료로 밥상을 차리는 ‘엄마손’, 그리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한 도시 서민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의 골방에서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한 후 혼자의 힘으로 CD를 제작하고 유통까지 하는, 1인 시스템(아마츄어증폭기 또한 ‘한받’이라는 뮤지션의 원맨 밴드다)으로 운영되는 희귀한 밴드. 이들의 음악 또한 반복과 변주의 마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대중음악계의 ‘레어(rare)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고작 기타 하나의 반주와 2옥타브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 분명해보이는 열악한 가창력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아마츄어증폭기는 벌써 4장의 정규 앨범을 냈으며 꽤나 많은 광팬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3~4개 코드의 단순한 주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게 무한히 반복될 것만 같은 연주는 무산자의 생활 속에서 체득된 좌절과 비애를 진솔하게 담아낸 가사와 어울러져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아마츄어증폭기 앨범 속의 반복은 변하지 않는 삶에 대한 체념이라기보다 변화의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들이 견고한 삶의 반복 속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는 감각들의 집적물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저 반복되는 몇 개의 코드는 변화 없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존재들의 삶의 양식과 닮아 있다. 그럼에도 이 단조로운 곡의 패턴은 무수한 동심원을 그리며 환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이 밴드의 골자가 되는 반복이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그것과의 대면과 긍정의 표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정된 수단과 조건으로 직조하는 변주의 미학은 생활 속의 혁명을 환기한다. 그러니까 아마츄어증폭기는 자신의 골방에서 숟가락 하나로 샘을 만든 셈이다.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이 한사코 놓기를 거부하는 그 숟가락이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가난하지만 그렇기에 한사코 홀로 서려고 하는 한 ‘자립 음악가’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부산일보> 2010년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