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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기

익사(溺死)해버린 익명(匿命)을 구하라

by 종업원 2011. 1. 23.
 

 

  우리는 매일 매일 ‘자기소개서’를 쓴다. 명백하게 허위가 아닌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과장해서 드러내고 그것이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단점을 ‘고백’한 후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견지한 어조로 ‘자기소개서’를 마무리 짓는다. 이는 비단 ‘취직’을 위해 작성하는 특별한 문건에 국한되지 않는데, 가령 미니홈피에 남기는 무수한 기록들―내가 간 곳, 내가 만난 사람, 내가 먹은 것, 내가 산 것, 내가 입은 것,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을 그럴 듯한 것으로 치장하는 데 동원되는 여기저기서 절취한 문장들은―모두는 ‘자기소개서’를 닮아 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웹(web) 상에 투기(投棄)하는 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 투기(投機/鬪技)는 이익/승리를 획득하는 데 매번 실패한다. 투기는 더욱 강력하게 돌아오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죄다 ‘자기소개서’적 구조를 갖는다는 위의 가정은 비단 허위로 가득 찬 현대인의 군상을 지적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소개서는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의 중독’으로부터 비롯되는 증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란 공포를 몰아내기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하면 할수록 ‘자기’는 더욱 희박해져만 간다. ‘자기소개서’의 그 어디에서도 ‘자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소개서’가 ‘나, 여기 있어요’라는 존재증명의 한 방식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이 ‘거기 누구 없나요?’란 외침임을, 그 외침은 지금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익사자의 조난부호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2010년,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스타 K> 2(M.net 제작)의 폭발적인 인기의 이면에 ‘자기소개서’적 구조가 놓여 있다는 것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몰린 134만 명의 참가자들이 보여준 각종 장기들과 숫한 고백들이야말로 ‘자기소개서’의 다른 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민 오디션’이라는 슬로건은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성’을 가리키는 표지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노출해야 한다는 ‘경고’에 다름 아닌 셈이다. ‘생존의 비용’은 다음과 같다. 수많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것(바꿔 말해 ‘고백’할 것), 이 모든 것을 즐길 것. 살아남기 위해선 즐겨야 한다. ‘자기소개서’는 이 같은 ‘즐겨라!’라는 명령을 작동 원리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에게 ‘TOP 11’이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생존자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타고 이들은 여러 방송에 출현해 자신들이 수행했던 미션 곡들을 ‘다시’ 즐겁게 부른다. <슈퍼스타 K> 2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댄스곡 ‘신데렐라’를 포크(folk)로 재해석해 다시 부르던 두 남녀의 모습에서 이 프로그램의 알짬을 깨단할 수 있다. 단시간에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여타의 자본제 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이 후크송(hook song)을 탁월한 감각과 능력으로 다시 부름으로써 이 노래는 ‘명곡’으로 재탄생한다. 미션을 수행하는 도전자들의 행위는 답보상태에 빠진 가요계를 구원하는 것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134만 명 중의 1명에게만 부여하는 ‘슈퍼스타 K’라는 명예는 기왕의 가요들을 즐겁게 다시 부름으로써 ‘한국 가요계’를 풍성하게 하는 ‘세공업자’들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134만 명이라는 참가자는 한국 가요라는 ‘원본’을 신화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TOP 11’이 앞 다투어 체제가 부여한 안락 속에서 언거번거 하며 제 살을 깎아먹고 있는 것과 달리 일찌감치 탈락해버렸지만 체제에 소화되지 않고 ‘살아남은’ 한 소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먹기 힘들정도로 빠른 랩을 쏟아내던 이 소년은 출연하자마자 탈락(추방)했지만 방송이 나간 이후 각종 사이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패러디되었다. 속칭 ‘힙통령’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회자되면서 그의 목소리는 이질적인 다른 목소리들과 뒤섞이거나 다양한 기기들의 변주를 통해 리믹스(remix)됨으로써 ‘원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한낱 웃음거리로 오랜 시간 희화화 된 바 있다. 중요한 사실은 숫한 고백을 통해 체제의 명령(즐겨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TOP 11’이 외려 ‘고유성’을 박탈당한 채 한국 가요계라는 프레임에 되먹혀 버린 것과 달리 ‘장문복’이라는 이 16세 소년은 제도로부터 ‘속사포 랩’을 승인받는 데는 실패했으나 외려 그 실패를 통해서 ‘익명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슈퍼스타 K> 2에서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134만 명 중의 1인, 다시 말해 ‘슈퍼스타 K’가 아닌 134만 명이라는 익명의 ‘k들’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지막 살아남는 단 한명의 생존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상식화는 ‘즐겨라!’는 자본제적 쾌락을 동력으로 삼는다. 이 같은 구조가 강제하는 ‘자기소개서’적 삶의 질서에 ‘타인’이 깃들 수 있는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오직 ‘자기’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문(門)의 빗장을 서둘러 걸어버리는 ‘거울사회’(김영민)는 ‘관계의 종언’을 가리킨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차이들을 만들어내며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자본의 심연에 익사하는 익명의 존재(자신을 포함하여)들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바깥보다 어두워져야 한다. 자신의 환함을 드러내는 데 바쁜 ‘자기소개서’적 삶은 오직 ‘자기’에만 집중한 탓에 거울 방에 고립되어 쓸쓸하게 죽어갈 뿐이다. 내부가 바깥보다 밝을 때 창은 거울이 되지만 안이 어두워질 때 창은 문(門)이 되기도 한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하고(問), 그러한 회의만이 체제(수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을 희미하게 열어준다.



<웹진; 아지트>http://cafe.naver.com/agitproject 주간논평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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