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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기

하이킥을 피하는 우리들의 자세

by 종업원 2010. 4. 12.



  상대의 안면을 강타하는 격투기 기술 중 하나인 ‘하이킥(high kick)’이라는 용어가 일상적인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규칙이 최소화 되어 있는 이종격투기와 닮아 간다는 증표로 읽을 수 있다. 승자 독식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있기에 삶의 전선에서 승리하는 법을 습득하는 데 열을 올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서점에 범람하는 각종 자기개발 서적들은 ‘옥타곤’(세계 최대의 이종격투기 단체인 <UFC>의 공식 경기장 명칭)에서 패배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본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점에서 ‘하이킥’이라는 표현의 일상화는 변화된 우리들의 삶과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양상을 적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하이킥’이라는 단어 속에는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공포와 ‘한방에 인생 역전’이라는 환상이 공존한다. 예컨대 ‘대박!’이라는 감탄사나 ‘대박 나세요’라는 덕담의 일상화는 생존의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대두된 IMF 체제 이후의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보고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박 나세요’라는 덕담 속에는 대박이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냉철한(?) 시대 인식이 내장되어 있다.


  이러한 승자 독식 구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계발 능력처럼 보이지만 신분상승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구조 속에서 보다 힘을 발휘하는 것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정치권이든, 연예계든, 학계든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흔히 ‘~라인’으로 통칭되곤 하는, 어떤 관계망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라인’이 곧 자신의 신분이 된다는 것은 삶의 결정권을 매번 다른 이에게 양도할 때라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대를 비판정신이 종언을 고한 시대라 바꿔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인생을 맡겨두고 있는가. 그 위태로운 투기로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경기장에서 상대를 쓰러뜨린다 해도 삶은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바닥에 때려눕히는 하이킥을 날리는 기술이나 하이킥을 피하는 순발력에 있지 않다. 하이킥을 기반으로 하는 삶은 노예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원한과 증오가 삶을 주관할 때, 권력을 가지지 못한 구성원들은 고립된 채 외롭게 죽어갈 뿐이다. 그러므로 삶의 변화는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유연한 스텝’을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기술이 아닌 쓰러질 듯한 상대를 일으켜 세우는 기술로, 함께 뒤엉켜 춤을 출 수 있는 기술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경기장을 무도회장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유연한 스텝’을 우리는 이미 습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과 다른 삶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흐트러진 상대에게 유연한 스텝으로 다가가, 쓰러질 듯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




                                                                                                         <부산일보>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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