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던지기

위대한 스승이 보낸 편지

by 종업원 2010. 4. 12.





  작년에 내가 한 일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처음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것이나 수백 장의 원고를 쓴 게 아니라 내 어머니에게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드린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이루어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남루한 당신의 옷차림처럼 오탈자로 가득한 메시지를 보는 순간 ‘말’이 ‘문자’에 선행한다는 기왕의 논의를 부정한 한 철학자의 논의를 비로소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수년 전 신병 교육대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가 온통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었기에 더욱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처럼, 30초간 명멸하는 핸드폰 액정 위에 오롯이 ‘새겨’져 있던 “사라하다 내아들”이라는 결여된 메시지는 늘 주면서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던 그 마음인 것만 같아, 액정이 꺼질 때까지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을 때의 마음 상함도 배우시게 되리란 짐작을 하면서 말이다.


  주거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의 다층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 ‘~의료기 체험 센터’나 ‘중소기업 특별전’이 열리는 행사장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하시는 어머님들이 있다. 내 어머니 또한 한동안 그분들처럼 열성적으로 그곳에 출근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살림을 하는 분이 그다지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을 자꾸만 구입해올 때, ‘사기 당했다’는 말로 어머니의 구매를 타박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보낸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생각해보니 내 어머니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물건을 구매한 이유를 뒤늦게 자각하게 된다.


  어머님들 옆에 앉아 아들 역할을 해주던 그 비정규직 청년들의 애교나 상술에 놀아난 것이 아니라 ‘~의학 박사’니, ‘~부장님’이니 하는 이들이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정보를 친절히 설명해주고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그때 내 어머니가 구매한 것은 ‘상품’이 아니라 ‘배움’이었던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에게 제품의 정보를 전달하고 원리를 이해시킨 그들이 설사 제도적인 의미의 박사가 아니라할지라도 상아탑 속에서 자족적인 만족을 위해 밤을 새우는 나 같은 이들에 비하면 훌륭한 ‘박사님’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님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곳으로 나가셨던 것은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배움을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수십 년을 배웠지만 단 한번도 그 배움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 땅의 <자식-학생>들은 <부모-선생>께 이제라도 무언가를 가르쳐 드려야만 한다. 그러니 오늘 부모님의 핸드폰 폴더를 열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드려보자.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몸소 체험하는 동안 그간 부모님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워왔는지,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선생님이었는지를 자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십 번을 반복해서 가르쳐드렸음에도 이해가 더디기만 했던 그 핸드폰 문자를 어느 날 벼락처럼 수신하게 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리라. 내 안에 이렇게 뜨거운 것이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스승이 보낸 ‘문장’을 읽으면서 말이다.


<부산일보> 2010년 3월 2일










'던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돗개 하나*  (0) 2011.01.23
익사(溺死)해버린 익명(匿命)을 구하라  (0) 2011.01.23
바보야! 문제는 자백이 아니야  (0) 2010.04.12
하이킥을 피하는 우리들의 자세  (0) 2010.04.12
숟가락 하나로 만든 샘  (0) 201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