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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2)-성문 앞에서

by 종업원 2015. 4. 19.

2015. 4. 19




시립 도서관을 빼곡이 메운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잠깐 고개를 들어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인가. 아무런 욕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움직임이 최소화되어 있는 사람, 산을 오르는 등반가처럼 환경에 예민한 사람, 생존을 위한 필수품을 챙기듯 하루 하루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빠짐없이 챙겨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서 정해진 시간에 떠나는 사람.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란 이제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더 멀리 뛰기 위해 오래도록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 별다른 목적 없이 올라온 도서관에서 각자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괴이한 열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백지(수표)처럼 표정이 없는 이들 속에서, 이들과 함께 잠시 기대어, 오늘도 몇 문장 읽고 또 몇 문장 쓴다. 


시험을 치르게 하는 사회, 모두를 고시생으로 만드는 사회, 사람의 의욕을 9[등]급으로 평준화 시켜버리는 사회.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앞에 읍소하는 소설 속의 인물처럼 제가 가진 권리를 망각하고 잔뜩 긴장하고 잔뜩 움츠려 한없이 예민해지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닳아가는 사람들, 급속도로 무뎌지는 사람들. 아무리 오랫동안 움츠렸다가 뛴다해도 합격자 명단에서 우리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평하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 또한 아파트 분양권처럼 이미 다 매수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시험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들이고 있다. 모두 앞다투어 입도선매 되고 있는 중이다. 나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성문(城文) 앞에 당도해서 나만이라도 들여보내달라고 읍소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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