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7
‘다음 날’은 돌이킬 수 없는 무력한 날의 모습으로 도착한다. 그런 다음, ‘다음 날’은 무너져버린 바로 그 날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명령으로 거듭 도착 한다. 비극 다음 날, 우리는 아직 무사하다는 안도감이 아닌 더 큰 비극이 오고 있음을 예감해야 한다. 하여, ‘다음 날 ’ 우리는 슬픔을 어금니로 물고 다시 물어야 한다. 서둘러 폐쇄된 문으로 다가서야 한다. 더 큰 비극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다음 날’은 우리를 심문하고 심판하는 날이기도 하다. 구조 요청에 응답 하기를 실패한 다음 날은 우리가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다음 날은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날이면서 실패했던 구조 요청에 다시 실패할 수도 있는 날이다. 다음 날은 구조 요청이 계속 되는 날이다. 구조 요청이 사라지는 날, 다음 날도 사라진다. 실패할지라도 구조 요청을 지켜야 한다. ‘다음 날’이라는 비극의 지복(至福).
저마다의 다음 날, 저마다의 구조 요청, 저마다의 응답, 저마다의 실패 속에서 우리가 만난다. ‘다음 날’은 비로소 만나는 날이다. 기어이 만나야 하는 날이다. 다른 이력과 무늬를 가진 다음 날들이 만나 맴돌며 소용돌이 친다. 이 어지러운 다음 날 속에서 ‘새 날’이 움틀 수 있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흐른다는 것은 지나쳐 가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거듭 마주쳐 새긴다는 것이다. 거듭 새겨지는 다음 날 속에서 존재의 결이 새겨진다. 다음 날은 존재의 결을, 저마다의 존엄을 구해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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