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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코로만 숨쉬기-무용함의 쓸모(2)

by 종업원 2016. 2. 4.

2016. 2. 4. 




겨울 초입에 앓았던 감기와 피부질환 탓인지 몸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다. 보름전부터 틈나는대로 민주공원 옆에 있는 중앙도서관을 등산하는 마음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굳이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보수동에서 내려 이렇다 할 목적없이 도서관을 향해 올라가는 길엔 ‘코로만 숨쉬기’ 외엔 아무 생각이 없다. 부산의 산복도로가 거의 그렇듯 낡고 작은 집들이 군집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오래된 건물 외벽의 균열처럼 나 있는 생소한 골목길을 무작정 오른다. 문득 내가 머무르며 오고가는 세상엔 아무런 변화가 없고 홀로 느끼는 작은 기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적인 정서에 틈입해 있는 자기연민을 덜어내고 여전히 날이 서 있는 자의식을 더, 더 내려놓아야겠다는 낡은 다짐은 쳇바퀴 같은 생각 속에서만 맴돌뿐이다. 아무런 욕심없이 가파른 산복도로를 오른다. 


아무 것도 아닌 걸음은 아무 것도 아닌 의욕 하나를 내 발밑에 선물처럼 떨군다. 오직 코로만 숨쉬기. ‘코로만 숨쉬기’는 감기에 대한 유일한 자가 처방인 셈인데 10년 이상 해오곤 있지만 특출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처방’이라는 것이 수인처럼 간수(의사)의 명령에 따라 운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나름의 사고와 판단 속에서 길어올린 원칙을 지며리 조형해 가는 것이라면 ‘효과’의 범위를 ‘바이러스균’의 퇴치 유무에만 적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련해보이거나 지나친 고집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병원을 가지 않고 자가처방으로 감기를 다스리는 일을 일종의 양생(養生)술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코로만 숨쉬기’는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힘으로 몸을 돌보고, 힘 쓸 수 있는만큼 몸을 들여다보며 몸과 교류하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배우고 깨치기 위한 ‘일관성’ 조형을 위한 수행에 가깝다. ‘코로만 숨쉬기’라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관성은 위급한 상황에만 도입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능’이 아니라 평소에도 조용히 머무르며 몸과 생활의 상태를 은근히 드러내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평소에 지인들로부터 콧바람이 불필요하게 세다는 핀잔 섞인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뜻밖의 ‘근력’(!)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길을 오르다가 더 이상 코로만 숨쉴 수 없을만큼 호흡이 거칠어지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올라간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오직 ‘코로만 숨쉬면서’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의욕을 품게 된다. 만나서도 코로만 숨쉬면서, 그렇게 고양되지 않고, 들뜨지 않으면서, 설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숨이 찬다고 해도, 코로만, 오직 코로만 숨을 쉬며, 가쁜 말을 누르고, 들뜨는 마음을 죽이며 욕심없이 주고받는 어울림의 방식을 조형해가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를 애써 말로써 전해야 할 때도(특히 강의를 할 때) 코로만 숨을 쉬며 지금 뱉고 있는 말의 호흡을 가늠하고 또 다스릴 필요가 있다. 코로만 숨쉬면서 살아야겠다. 오랜 잠수 끝에 수면 위로 다급히 올라가는 이가 코가 아닌 입으로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간절하고 다급한 일로 생활이 기울지 않도록 두루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그건 ‘코로만 숨쉰다’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를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조용히 키워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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