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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본가(本家)’라는 급진적인 장소

by 종업원 2016. 4. 10.

2016. 4. 9




가족 모임을 하기 위해 ‘본가’에 갔다. 아버지 생신과 매형 생일이 겹쳐 ‘합동 생일 축하’를 위한 자리여서 종일 이곳 저곳을 누비며 두 분에게 드릴 선물을 샀다. 본가에 갈 땐 무얼 준비하든 한없이 부족하고 뭔가가 빠져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지극한 효심 때문은 아니고 ‘변변한 직장도 없고’, ’아직 장가도 못간 못난 놈’이기 때문일 터다. 2007년 겨울에 운 좋게 등단이라는 것을 했고, 자연스레 ‘글을 쓰며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빨아주시는 옷 입고,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자기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일상적으로 여러 차례 주어졌던 터라 고정된 수입이 없었음에도 별 고민 없이 독립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오랫동안 사람들은 내 생활을 일러 굳이 ‘자취’라고 불러온 터라 어쩌면 때늦은 ‘자취 생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건 2009년부터다. 장전동 다세대 주택에서 시작된 독립 생활은 2010년 하단을 거쳐 2012년 남천동으로, 다시 2014년엔 지금의 송도로 옮겨왔다. 독립 전의 삶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시간은 내 삶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그 집들을 옮겨다니는 동안 크고 작은 곡(골!)절이 있었지만 ‘이야기될 수 없음’을 잘 안다. 겨우, 독신(獨身)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가에선 한없이 부족하고 죄송한 나는 가능한 말을 아껴 듣거나 묻는 데만 집중한다. 누나와 매형의 딸은 늘 나를 신기해하고 누나와 매형은 나를 신기(한심)해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 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두 사람에겐 중요한 일이 너무 많고 가족을 꾸리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여서 아직 ‘독신’인 나에 대해 그 어떤 궁금증이나 굳이 무릅쓰고 개입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한달에 한번 이상 ‘처가’에 오는 이유 중 상당 부분 또한 바로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다움의 가치’를 지키고 보살피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모두가 (아직도!) 독신인 나를 배려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아무도 내게 그 무엇도 묻질 않는다! 나는 본가에서만큼은 ‘정상인’처럼 보여야 하기에,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우선 밥을 많이 먹는다. 고기도 많이 먹는다.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에도 서둘러 동의한다. 나는 오늘도 회를 먹고, 고기를 먹었다. 맛있었다. 그런데 매번 그 ‘맛’에 만족해도 될지, 그 맛에 길들여져도 괜찮은지 고민하게 된다. 본가에서 더 이상 과식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고기도 먹고 싶지 않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대화하고 싶다. 근황을 궁금해하고 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런 바람을 철없고 이기적인 것이라 말한다고 해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본가’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본가’에서 알게 된다. 이곳에서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독립’할 수 없다는 것을. ‘독립’이란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때만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본가’라는 세계에서 독신이란 ‘고립'의 증상일 뿐 결코 ‘독립’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여전히 ‘본가’에선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만큼 고기도 많이 먹고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본가’에서의 ‘독신 선언’이 아니다. ‘본가라는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독신의 감각’을 벼려가는 것,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 그것을 독신의 조건으로 수락하는 것, 비정상의 자리에서 기꺼이 정상의 자리로 잠시 옮겨가보는 것, 그렇게 ‘본가라는 세계’를 끝까지 알아가는 것, 마침내 알되 알게 된 것에 관해서는 끝내 말하지 않는 것. ‘본가’야말로 급진적인(radical) 장소라는 것을 뒤늦게 알겠다. ‘급진화’가 생활과 무관한 곳에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내키는만큼 비상(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중심에서 거의 모든 것과 깊게 연루되어 있는 조건 위에서 필사적으로 행할 때만 겨우 가능한 것임을. 


‘본가라는 세계’는 혈연 관계에 국한되는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애인, 친구, 선생, 공동체, 지역 속에도 '본가’가 있다. 내가 의탁하고 기대어왔던 모든 곳에 ‘본가적인 구조’가 편재해 있다. ‘도리’와 ‘이치'라는 완고한 자리에서 암묵적인 동의를 강요하며 내밀한 폭력으로 유지되는 (비)정상성의 세계. ’결별’ 속에서 ‘관계’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본가라는 세계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본가라는 내밀한 훈육 장치를, 정상성을 생산하고 구획하는 가내수공의 구조를 각자의 경험 아래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내고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본가라는 세계를 살아냄으로써만 애인 속에서 독립할 수 있고, 절친 속에서 독립할 수 있다. 선생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지역 속에서 독립의 장소를 일구는 방법 또한 거기에 있다. 그러니 급진적인 장소는 나의 본가만이 아니다. ‘당신의 본가’ 또한 우리의 급진적인 장소로 일굴 수 있을 때 각자의 독립이 누군가가 고립되는 조건이 아니라 서로의 독립을 돕는 운동이 된다. 그건 나(너)의 신념과 주장이, 심지어 생활 조차 ‘누군가의 본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수락하는 곳에까지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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