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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무명의 무덤이 이끄는 발길

by 종업원 2017. 4. 28.

2017. 4. 16

 

 

 

송도에서 장림으로 삶터를 옮긴지 반년이 다되어간다. 그 흔한 공원 하나 없는 동네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 아이들로 넘쳐난다. 아이들의 몸짓을 눈으로 쫓다보면 퍽이나 애잔한 마음이 들곤하지만 인간적인 세속에 침윤되지 않은 것 같아 작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을 등뒤로 하고 뒷산을 오른다.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동네 어귀만을 몇번 맴돌다가 매번 걷기를 포기했었지만 이 봄볕만큼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당연히 산책로나 이정표 따위는 없어 길은 자주 끊어져 왔던 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일이 잦다. 이쯤되면 길을 따라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파른 언덕 쪽으로 발길을 무심히 돌려본다. 한낮의 뒷산이긴해도 인적도, 인기척도 없는 곳에서 길을 벗어나 걷는 걸음은 작은 긴장으로 팽팽해진다. 길을 벗어났다고 했지만 아파트 단지에 바투해 있는 산이니 사람의 걸음이 닿지 않았던 곳은 없을 것이다. 희미한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 걸어올라가본다. 이 모퉁이를 돌면 길이 막혀 있을 것만 같고 곧 길이 끝나버릴 것 같지만 조금 더, 더 깊은 쪽을 향해, 사람의 흔적이 더 희미해지는 곳을 좇는 심정으로 그저 걷는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잡초로 무성한 둔덕이 있다. 누군가의 무덤이다. 희미한 발자국은, 걷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산속의 오솔길은 누군가의 무덤에 이르는 길이었던 것. 길이란 더 이상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된다. 어느 깊은 산자락을 함께 걷던 친구가 언젠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다. 무명의 무덤에 이르게 한 희미한 오솔길은 다행히 아직 길이 아니지만 도리없이 또한 길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잡풀들이 길의 모습을 지우지만 그 사이로 희미한 길의 결이 남아 있다. 누군가가, 아니 단 한 명이 걸었던 흔적. 그 한 명이 없다면 사라지고말 오솔길. 언젠가 누군가가 이 오솔길을 걸으며 희미한 흔적을 남겼고, 또 누군가가 그 흔적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한 명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한 명이 더 살아 있다”(김숨, 『한 명』, 현대문학, 2016)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무명의 무덤이다. 묘비명도 없이 죽은 이가 산 자의 걸음을 이끈 것일까. 이름도 없이 죽은 이의 무덤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걸으면 그 이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무명의 무덤으로 향하는 한 사람의 걸음이 이곳에 없는 한 사람의 걸음을 증언하고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한 사람의 걸음을 부른다. 이름없는 무덤을 한 사람의 걸음의 미래라고 불러도 좋을까. 2017416. 봄볕이 완전히 사위어갈 때까지 뒷산의 이름없는 무덤들을 따라 무덤을 좇아 걸었다. 무덤들 곁에 잠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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