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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곳간

나 아닌 것과 함께―조은, 『또또』(로도스, 2013)

by 종업원 2017. 10. 14.



 


 

 

 산책 :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는 

 

상처 받은 채 사직동 낡은 집으로 왔던 작은 존재 또또와 시인 조은은 함께 살았던 17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두 번 산책을 했다. 아픈 또또를 위해 나섰던 매일매일의 산책에서 그들은 광화문 일대와 막 개방되었던 인왕산 숲길을 빠짐없이 익혔고 마침내 그들만의 길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상처 받은 이는 걷는다(김영민). 건강을 위해서나 삶의 여유 따위를 위해 걷는 게 아니다. ‘걷기라는 기본적인 행위에도 이미 들러붙어 있는 자본제적 습속과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목적을 잊고,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세속의 체계 바깥으로 나---보기 위해, 없던 길을 찾으며 걷는다. 오랫동안 독신 생활을 해온 시인 조은은 원래 산책을 즐겨하고 좋아했을 것이다. 22년 넘게 살았던 사직동 근처의 산책로를 상처 입은 채자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또또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은 조금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아닌 것을 위해걷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두 영혼의 매일매일의 걸음이 세상에 없는 우리들만의 길을 내었다. ‘우리라고 했지만 이 표현은 통상적인 -’(주인과 애완견)라는 이자 관계를 넘어선다. 또또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 한번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던 조은 또한 어디에도 묶이고 싶지 않다(41)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들만의 길이라는 꽤나 낭만적인 구절을 풀어쓰면 결코 우리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함께 했던 순간들이 만든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하다. 

 

 

 

고장 난 상태로 함께 () 사는 일 

 

또또와 함께 했던 시간동안 시인의 삶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함께 잘 살았다는 아련한 회고보다 함께 못 살았다는 선명한 감각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함께 잘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함께 못 사는 일은 드문 일이다. () 때문에 못 산 게 아니라 함께못 살았다는 것은 안 되는 줄 알지만그럼에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크게 의식하지 않고 고장 난 기계라는 구절을 매만져오면서 글쓰기와 삶의 양식을 설명하고 해명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고장 난 상태란 고치거나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라는 것,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고장 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고장 난 상태로 살아가는 방법, 어울리는 방법, 보살피는 방법을 조형해가는 행위는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은 새로운 작동법과 사용법을 발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잘 망하는 일이란, 고장 난 상태를 살아내며 새로운 작동법을 발명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나-(우리)의 기반을 뒤흔들고 부수는 나 아닌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들도 죄다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는 데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고장 난 상태상처 입은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처 입은 존재라는 것을, 고장 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감각일 수밖에 없다. 시인 정호승은 1990년대에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고 했지만 그건 함께 잘 살자는 소비자본주의의 달콤한 주문이 낭만적인 정조로 변주된 것이며 자본의 외부성을 차단해버리는 체제의 미시적인 통치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은 슬로건에 불과하다. 체제 바깥으로 외출하는 인문실천의 한 양식으로 산책에 관한 논의를 일매지게 이어오고 있는 김영민은 이를 걷다가 죽어버려라고 급진화한 바 있다. 아직은 저주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고장 난 채로 죽어버려라는 말을 그 옆에 놓아두고자 한다. ()의 의지로 바로 잡을 수 없는 조건을 수락하고 나 아닌 것과 함께 () 사는 일의 좁고 드문 삶의 양식 속에 다르게 살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게, 실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  

 

몰운대 산책길에서 우연히 조은의 시집을 읽게 되었고 드문드문 읽으며 시인이 아닌 사람 조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장을 살펴보니 조은의 시집 몇 권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다. 시인의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또또』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일주일동안 아껴 읽으며 천천히 오랫동안 조은의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읽은 글보다 아직 읽지 않은 글이 훨씬 많다는 데 안심하며 그가 쓴 책들을 한권씩 모으고 그가 쓴 시들을 한편씩 읽어갔다. 언젠가 차를 마시며 차의 맛을 알아차렸던 순간처럼 누군가에게 알릴만큼의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 맛없이 사는 걸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또또』를 읽으며 좋아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생소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작년 이른 봄 한 선생님과 천변을 걸으며 나누었던 담소 중 공부한 것을 강연이나 글로 나누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라는 인상적인 질문이 내 안에 남아 있다가 변주된 것이라 짐작된다. 

 

상처 받았지만 작고 예쁜 강아지 또또처럼 『또또』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책이지만 차의 맛과 같이 제대로 좋아하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내게로 왔지만 내가 품을 수 없는 상처 받은 영혼과 부대끼며 살아낸 이력을 적바림한 글 묶음, 『또또』. 독신으로 사는 시인과 죽을 힘을 다해 인간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또또에 관한 이야기는 개와 인간의 우정이나 사랑 따위로 갈음되지 않는다. 평생 인간에 대한 악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또또를 곁에서 보살피면서도 결코 주인으로 행세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남남 같은 동거기(同居記)는 나/너 아닌 것과 함께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어울림의 조건으로 수락해온 이력 속에서만 움트는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세상에 도저한 폭력에 내몰려 있는 상처 받은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은 여러모로 마음에 부치면서도 애틋했고, 내내 마음 아프고 쓸쓸했지만 안락사를 선택해야만 했던 마지막 순간조차 또또야, 우리 오늘 씩씩하게 잘하자.”(177)라며 서로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며 단단한 힘을 발산한다.이 보기드문 힘의 출처는 필시 /너 아닌 것과 함께 () 산 이력속에서 영글어간 것일 테다. 나약한 이들이 고장 난 상태로 살아낸 시절을 바지런히 담은 이 책에 대해 나는 두 달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보았다. 

 

쓸모없는 일에 열심을 부려보는 일의 결과가 대개 그렇듯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라는 좋아한다는 것에 관한 다른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만한 행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보상을 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알린다는 데(혹은 들킨다는 데) 주목해보자. ‘짝사랑조차 좋아하는 것을 알리지 못한다는 그 불가능이라는 조건에 기대어 있다는 점에서 타인의 반응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좋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보상에 기대어 있다는 점에서 전형성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좋아하는 것또한 탁월한 능력일 수 있으며 때론 드문 힘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또한 많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음으로써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먼 방식 사이에 실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놓아보고 싶다. ‘실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은 얼핏 헌신적인 사랑을 풀어서 쓴 말처럼 보이지만 헌신이라는 어휘에 내장되어 있는 자기희생의 나르시시즘과는 관련이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밀당을 하며 을 타는 기교 속에서 영리하게 탐닉하는 냉소적인 사랑과도 다르다. 또또에 대한 조은의 사려 깊은 돌봄은 실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의 작은 사례가 된다. 또또와 조은이 함께 만든 없던 삶의 양식’(“우리들만의 길”, 11)에서 돌봄이란 배려나 헌신, 희생이라기보단 나 아닌 것과 함께살아가며 없는 길을 내는 작은 걸음의 이력이다. ‘애완(愛玩)’에서 반려(伴侶)’로의 이행은 뜻 깊은 것이지만 반려가 공동체의 구성원의 자리만이 아닌 다른 공동체’, ‘없던 공동체’, ‘공동체 아닌 공동체를 조형해가는 연극적 수행(김영민)의 조건이라는 자리를 『또또』와 함께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전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줬다

칠십이 년의 부피는 보잘것없었다

그의 딸은 그 돈을 가지고 있다가

천원짜리로 바꿔 두 장씩 접었다

늘 지갑에 따로 넣어 다니다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에게 주거나

슬쩍 놓아두고 사라졌다

어느 때는 네 묶음이 슬그머니

낡은 배낭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착착 접힌 천원짜리가

어머니의 천국 계단이라도 되는 듯

한 계단 부족하면 그 나라에 못 들기라도 하는 듯

그녀는 천원짜리를 접고 또 접었다

못 듣는 사람 눈먼 사람

팔 없는 사람 다리 없는 사람

기어가는 사람

껌을 들이미는 사람

예의 없고 무례해 보이는 사람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은 생판 달았다

죽은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지만

 

조은, 「모순 3, 『생빛살』(문학과지성사, 2010)

 

 

 

<문학의 곳간> 39회 별강문_2017930_중앙동 히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