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아기를 만나면 저절로 함박 미소를 띠게 된다. '너는 언제 저런 아이 낳고 살래'라는 생애사 평균 시간표가 한참 늦은 것에 대한 타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무조건적인 이 반응이 다행스럽다. 홀로 길을 걷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저절로 고양이 소리를 내게 된다. 야옹야옹. 말하기를 중단하고 다만 가엽고 반가운 마음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한번도 길고양이가 나를 향해 다가온 적 없지만 내가 흉내 낸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척 다행스럽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무방비 상태는 도리없이 반복된다. 생활 속에서 그 반복만큼 다행스러운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생활-글-쓰기 모임>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바보처럼 미소를 띠며 듣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는 것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의 그런 미소를 보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듯한 말을 듣는다. 7회 동안 이어졌던 모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내내 미소를 띨 수 있었던 것은 늘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이에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를 말하기 위해 애썼던 것은 생활글을 나누는 길목에서 '길고양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생활은 힘이 세지만 그것이 노출될 땐 대체로 가엽고 연약하다. 나는 그것이 생활의 정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애써 감추려 하지도, 그럴듯하게 꾸미지 않아도 좋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활을 마주하고 아기를 만난 듯 미소를 띠고 길고양이를 만난 듯 반갑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가혹한 자기 검열 없이, 무방비 상태로 서로의 생활을 만나는 시간. 그것이 어디 각자의 생활을 나누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일이겠는가. 미소 띠게 하는 아기와 가엽지만 반가운 길고양이는 삶 곳곳에, 이 세계 곳곳에, 당신과 나 사이 곳곳에 있다. 무방비 상태가 되어 함박 웃음을 짓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 일은 언제라도 부정당할 수 있는 연약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연약한 상태가 되는 일, 무방비 상태를 노출하는 일이 세상의 연약한 것들을 틀림없이 알아보고 지키는 일을 한다. 용감한 이들만이 그럴 수 있다. 무력해보이는 그 행위의 반복 또한 작은 보살핌이다. 무릎 굽히고 앉아 꿋꿋하게 행하는 걸레질이며 생활의 텃밭을 일구는 노동이기도 하다. 이 ‘살-림’ 속에서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성숙하는 일, ‘살림살이’를 바꾸지 않고도 정성을 다해 생활을 돌보는 일, 오늘도 무방비 상태로 함박 웃음을 짓는 일, 가엽고 반갑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일, 생활글을 쓰는 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생활-글-쓰기 모임> 7회 후기_2015. 9. 16
'회복하는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복하는 글쓰기 4기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 않은 책-쓰기' (0) | 2019.04.16 |
---|---|
회복하는 글쓰기 4기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 않은 책-쓰기’ (0) | 2019.03.09 |
회복하는 글쓰기 : 다시 시작하는 생활의 장르 (0) | 2018.10.07 |
중심을 이동 하는 운동 : 생활, 모임, 글쓰기 (0) | 2018.06.18 |
[회복하는 글쓰기] Ⅲ. 단편영화와 함께 비평 쓰기 (0) | 2018.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