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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용감한 연약함

by 종업원 2019. 2. 24.


어디서든 아기를 만나면 저절로 함박 미소를 띠게 된다. '너는 언제 저런 아이 낳고 살래'라는 생애사 평균 시간표가 한참 늦은 것에 대한 타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무조건적인 이 반응이 다행스럽다. 홀로 길을 걷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저절로 고양이 소리를 내게 된다. 야옹야옹. 말하기를 중단하고 다만 가엽고 반가운 마음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한번도 길고양이가 나를 향해 다가온 적 없지만 내가 흉내 낸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척 다행스럽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무방비 상태는 도리없이 반복된다. 생활 속에서 그 반복만큼 다행스러운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생활-글-쓰기 모임>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바보처럼 미소를 띠며 듣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는 것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의 그런 미소를 보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듯한 말을 듣는다. 7회 동안 이어졌던 모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내내 미소를 띨 수 있었던 것은 늘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이에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를 말하기 위해 애썼던 것은 생활글을 나누는 길목에서 '길고양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생활은 힘이 세지만 그것이 노출될 땐 대체로 가엽고 연약하다. 나는 그것이 생활의 정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애써 감추려 하지도, 그럴듯하게 꾸미지 않아도 좋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활을 마주하고 아기를 만난 듯 미소를 띠고 길고양이를 만난 듯 반갑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가혹한 자기 검열 없이, 무방비 상태로 서로의 생활을 만나는 시간. 그것이 어디 각자의 생활을 나누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일이겠는가. 미소 띠게 하는 아기와 가엽지만 반가운 길고양이는 삶 곳곳에, 이 세계 곳곳에, 당신과 나 사이 곳곳에 있다. 무방비 상태가 되어 함박 웃음을 짓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 일은 언제라도 부정당할 수 있는 연약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연약한 상태가 되는 일, 무방비 상태를 노출하는 일이 세상의 연약한 것들을 틀림없이 알아보고 지키는 일을 한다. 용감한 이들만이 그럴 수 있다. 무력해보이는 그 행위의 반복 또한 작은 보살핌이다. 무릎 굽히고 앉아 꿋꿋하게 행하는 걸레질이며 생활의 텃밭을 일구는 노동이기도 하다. 이 ‘살-림’ 속에서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성숙하는 일, ‘살림살이’를 바꾸지 않고도 정성을 다해 생활을 돌보는 일, 오늘도 무방비 상태로 함박 웃음을 짓는 일, 가엽고 반갑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일, 생활글을 쓰는 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생활-글-쓰기 모임> 7회 후기_2015.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