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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가을 햇살

by 종업원 2019. 10. 9.

2019. 10. 9




좋아하는 것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파괴 하기. 오늘도 일을 한다. 부서질까 염려하며 손으로 매만지던 것을 불현듯 강하게 쥐어 터트려버리거나 애면글면 하며 보살펴온 것들에 고착되지 않기 위해 무심한척 애써 거리를 두다가 뜻없이 방치해버리는 일들. ‘나도 살자 등을 돌리는 순간 숨이 멎어버리는 것들, 기지개를 켜자 파괴되는 것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영영 떠나버리는 것들. 없이 푸르기만 식물에 둘러 싸여 있는 같다. 짐작할 없는 방향으로 한없이 뻗어나가는 덩굴에 휘감겨 있는 생활에선 매만지는 모든 것들이 모욕적인 시선으로 돌아보는 것만 같다. 


손수 지어 먹던 밥이 성의없는 한끼가 되고 아껴두었던 영화를 잠들기 전에 틀어놓고 자버린다.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이 떠오를 삭제나 차단 버튼을 누르는 심정이 되어버린다. 애를 써서 보살핀 노동 다음엔 땀을 너무 흘려 쉰내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만 남고, 정오에 짧아진 그림자처럼 애씀은 삶의 면적을 갉아먹기만 한다. 인과응보의 이치를 알리기 위해 누군가를 실컷 때려주고 싶다가도 곧장 흠씬 두들겨 맞는 낫겠다는 심정이 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이 파괴된다. 쓰면 쓸수록 문장은 비어 간다. 


아이는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동물이다. 그래서 마음놓고 이뻐할 있다. 닮은 것엔 마음껏 욕망을 투여할 있으니까, 온통 닮은 것만 찾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비슷한 것들을 찾아 기어코 비슷하게 만들어버리는 욕망의 틈바구니 속에서 무엇도 닮았다고 해선 된다는 신념은 무엇도 좋아할 없게 만든다. 하지만 어젯밤 인간을 닮은 동물이 너무 그리워 잠꼬대를 하고 말았다. 말없이 푸르기만 식물 같은 표정으로. 아무도 없는 공원에 앉아 가을 햇살이 사위어 가는 것을 본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냥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하던 것이 힘없이 추락하는 것을 지켜본다. 내일도 몰락을 지켜보리라. 드물고 귀한 것이 바스러지는 것을 지켜본 목격의 시간은 덩굴처럼 뻗어나가는 폐허의 속도와 닮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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