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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12월의 메모(1-계속)

by 종업원 2019. 12. 8.

2019. 12. 3 

최상급의 발명가들 

오늘도 편지 생각을 했다. 편지를 '써야 한다'와 편지를 '쓰고 싶다'를 왕복하다보면 한 통의 편지가 의무와 욕망 사이에서 강철처럼 단련됨을 느끼게 된다. 단, 보내야 하는 편지는 빼고 보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보내는 편지 말이다. 해야 하는 일은 미루면서 하지 않아도 좋은 일에 열중하는 일처럼 말이다. 써야 하는 글을 끝내 미루고 쓰지 않아도 되는 글에 과잉 몰두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것이 내가 누리고 있는 유일한 사치인지도 모른다.  펑펑 읽고 펑펑 쓰는 것.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는 사람이 확인하는 요동치는 중량처럼 오늘 내가 누리는 사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비대하고 무겁다. 그 견딜 수 없음을  오랫동안 누려왔다. 보편적이지 않은 '최상급'을 홀로 개척해온 시간이라고 해도 좋다. 최상급 표현을 남발하는 치들을 신뢰하는 건 어렵지만 과장된 표현을 마치 처음하는 것인냥 한결 같이 반복하는 이들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최상급의 발명가'라 의심해봐야 한다. 하지만 혼자 들떠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들떠 있음을 인정하기 싫은 건 마이너한 '최상급'을 독점하기 위한 반동적인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항상 실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봐주길 원한다.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는지 알아봐주길 원한다. 촛불이 소리를 내는 순간이 꺼질 때인 것처럼. 들떠 있는 최상급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도, 세상에 등록되지도 않지만 이들은 오늘도 발명하기 위해 발병(發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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