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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아픈 사람―회복하는 사람―다른 사람

by 종업원 2018. 12. 19.

2018. 12. 19


종종 모임을 녹음해왔고 몇년간은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글로 정리해 공유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견디며) 듣고 불필요한 말버릇을 고치기 위해 애를 써본적도 있고 부재하는 이를 염두에 두며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간 녹음 파일을 달라고 요청하는 이가 적지 않았지만 파일을 끝까지(혹은 제대로) 듣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자신이 있지 않았던 자리에서 나누었던 말들을, 기묘한 에너지가 교차하고 서로의 자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혼란을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모임이 강의 형식이 아닌 참여하고 있는 여럿이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인 탓에 쓸데 있는 말보다 쓸데가 없어보이는 말이 많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녹음 파일을 제대로 듣는다는 차라리 조금 기이한 일에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녹음 파일을 끝까지 들었다. 매번 시간이 넘는 녹음 파일을 듣고도먼저 말하지 않던 태도가 내겐 사람의 성품과 됨됨이에 대한 신뢰로 다가왔다. 새삼 돌이켜보니 무엇보다 그이는 내내 아픈 몸이었고, 요양을 위해 고향에 내려온 기간동안 모임에 참여한 것이었다. 아픔에 대한 호소는 자아의 고백과 맞닿아 있는 점이 있어서 나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되 감응하지 않기 위해 꽤나 조심을 했다. 그런 이유로 짧은 기간이나마 새로운 모임도 만들고 크고 작은 도움도 주고 받을 있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그때는 그이가 아픈 사람이라는 점에 감정 이입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썼을 회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점에는 조금 무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재활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행하기 위한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애씀에 관한 이력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는 가끔 하지 않던 일을 한다. 생소한 일임에도 너끈히 일을 해내곤 한다. 변덕이 가져다주는 행운의 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아프다라는 비일상적인 체험과 와중에 자아 바깥으로 나가보려는 드문 시도가 전에 없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어디든 사람들의 어울림이 이루어지는 곳엔 아픈 사람들이 있다. 아픔의 대한 말은 대개 고백의 옷을 입고 등장을 하며 너무나 간절해서 모두를 자신의 아픔 안으로 가둬버린다. 우리는 종종 곁에 있는 사람의 아픔에 포로가 되곤 한다. 나는 있는 포로됨의 시간을 존중하고 싶다. 더불어 함께 옴짝달싹할 없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뒷모습을 멀찌감치서 보고 싶기도 하다. 아픈 사람 중에 어떤 이들은 회복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아픔에 머물러 있는 이는 언제나 우리에게 얼굴을 봐달라고 간청하지만 회복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이는 뒤를 돌아보는 없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길을 걸어간다. 우리가 있는 이제는 그이가 누구인지 확신할 없는 사람의 뒷모습 밖에 없다. 어울림 속에서 존재의 성숙을 돕는 건  뒷모습이다. 가끔 누군가가 남긴 목소리에서 그런 뒷모습을 보(듣)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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