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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오솔길 옆 작은 빛

by 종업원 2020. 3. 22.

2020. 3. 19


숲과 산은 말의 모양에서부터 갈래길을 품고 있다. 그 입구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작은 망설임과 확신이 함께 한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긴장과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걸음으로 교차할 때 발생하는 추진력은 기름 없이도 오래 타오르는 횃불과 다르지 않다. 잘 타는 재질이어서라거나 잘 타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잘 타오르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산책은 갈래길조차 마다하며 사잇길을 찾아나서는 일상의 작은 모험이다. 모르는 길이라도 한참을 걸을 수 있고 누구나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까지 너끈히 감내해 낸다. 5분만에 사위가 밝아지거나 해가 지는 것을 목격했던 것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꽃이 피기도 하고 몇걸음으로 길을 잃거나 길을 찾기도 한다. 뭐든 단숨에 일어나는 것 같은 이런 신비한 체험은 에너지가 최고도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이기도 하다. 

모험은 모르는 장소에 깊숙이 들어가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숲과 산처럼 깊숙이 들어갈수록 알아차리기보다 점점 더 모르게 되는 장소가 있다. 숲을 관통하거나 산의 정상까지 오른다고 해도 분명해지는 건 '모르겠다'라는 감각이다. 어떤 사람 만나는 일이 숲과 산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할 때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기도 하고 어느 순간 깜깜한 암흑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되기도 하고 금새 노인이 되어버리기도 한도 한다. 수다쟁이였다가 어느새 시인이 되기도 하면서.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간 오랜만의 산책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허둥대다 가만히 앉아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길의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숲과 산이 온몸으로 내뱉는 숨결처럼 느껴졌다. 내 숨도 거칠었지만 여전히 코로만 숨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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