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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새 것과 헌 것

by 종업원 2022. 12. 1.

오늘도 우당탕탕거리며 일터로 나섰다. ‘우당탕탕’이란 말엔 어떤 사연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 우당탕탕거렸다는 건 오늘도 눈뜨자마자 게으름을 피웠다는 말이다. 일터에 갈 땐 할 수 있는만큼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으려고 한다. 마침 깨끗한 양말이 없어 새 양말을 꺼내 신고 잰걸음으로, 아슬아슬하게 일터에 도착했다. 

우당탕탕-게으른-잰걸음-지긋지긋한-아슬아슬. 오늘의 내 살림을 헤아려보다 새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의 줄기를 가지게 되었다. 새 것은 기분좋고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한다. 포장지를 뜯어 사용하지 않아도 든든하고 쾌적하다. 특히나 가난한 이들에게 새 것은 더 가지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형편만 허락된다면 더 많이 쟁여두고 싶은 것일테다. 심지어 쓰지 않고 아끼더라도 새 것 앞에선 궁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당탕탕 게으름을 감추려는 요란한 몸짓으로 새 양말을 꺼내 신으며 세탁기 안에 던져 놓은 양말들이 떠올랐다. 틈날 때 양말을 빨아 햇볕에 내어 말리고 걷어서 잘 개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새 양말을 신게 된 것이다. 헌 것을 돌보지 않을 때, 헌 것을 돌보지 않았다는 걸 감쪽 같이 감춰버리고 싶을 때 새 것을 찾고, 새 것만 좋아하고, 새 것에 위로받고, 새 것을 으시시대며 뽐내왔던 게 아닐까. 그런 못나고 뻔뻔한 마음들이 곁에 있어온 것들을 멀찌감치 밀쳐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두면서 ‘헌 것’이라는 이름으로 게으름과 부끄러움을 덮어버리는 게 아닐까. 

깨끗하다는 표현은 한번도 쓰지 않은 것에 붙일 수 없다. 기쁜 마음으로 쓰고, 쓴 뒤엔 정리하고 챙기고 털어내고 내어말리고 돌본 것들에만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깨끗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은 잘 쓰고, 잘 치우고, 잘 보살피는 사람이다. 게으름의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하는 나날 속에서 새 것이 내는 몸짓과 소리가 우당탕탕이라면 헌 것이 아닌 곁에 있는 것들이 내는 몸짓과 소리는 어떤 것일까. 내 생활 속에 다른 몸짓과 소리가 깃들 수 있게 청소부터 좀 해야겠다. 집안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새 것들을 치우며. 

 

중앙동 작업실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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