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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오늘 품고 있는 물음 : 수면 아래의 표정들

by 종업원 2022. 9. 19.

2022년 9월 19일

지난주 목요일 k작가와 저녁을 먹고 용두산 공원 근처를 산책했다. 오늘 홀로 그 산책로를 걸으며 옆에 k작가가 있었다면 무슨 이야길 했을까를 떠올려보았다. k작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지만 지난 목요일 산책과 이어지고 있는 느낌도 분명해서 k작가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말을 해보고 작업실로 돌아와서 옮겨보았다.

“요즘 품고 있는 물음은 뭔가요? 질문이라는 말이 조금 더 자연스럽겠지만 그건 (해)답을 떠올리게 하니까, 물음이라고 말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할 거 같네요. 저는 요즘 ‘표정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어요.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사이에 떠오르는 것들. 그런 것들은 대개 변사체처럼 느닷없거나 경악스러운 것들에 가깝지만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겠죠. 가끔씩 발견하게 되는 나의 얼굴도 수면 아래에 있다가 어느날 갑자가 드러나는 것들 중에 하나일테니까요. 나 같지 않은 주름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나다운 표정들, 뒤늦게 알게 되는 진실들,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문제들, 관계들, 그러나 매일매일, 조금씩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들, 그러니까 매일매일 무신경하게 애써 무시하거나 덮어두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어느새 거대한 실체가 되어서, 암덩어리처럼 주인 행세를 할 때의 어찌할 수 없음 같은 것들. 실은 오늘도 뭔가를 알아차렸지만 동시에 뭔가를 모른척했던 것도 같아요. 오늘(의 관계)을/를 위해 (모른척) 넘어가야 했던 것들, 멈춰서서 들여다보거나 붙들고 물어봤어야 했던 것들. 주로 어둡고, 가난하고, 허약한 것들이 먼저 등장하곤 하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고민이나 생각이 저 스스로 문제를 풀거나 명료한 언어의 모습으로 등장할 때도 있어요. 자연스레 몸과 구분되지 않는 병(질환)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 물음 속엔 능숙함이나 숙성된 것들, 수확이 필요한 것들에 대한 것도 섞여 있답니다. 제가 자주 생각하는 건 마침내(!) 드러난 것들의 표정이라기보단 저 수면 아래(몸 아래, 감정 아래, 생각 아래, 관계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의 표정인지도 모르겠어요. 더 이상 요동치질 않아서, 너무 잠자코 있어서, 더 이상 잘난 척을 하지 않게 되어서, 발버둥쳐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오늘도 가라앉아 있는 것들, 그 표정들이 잠깐씩, 깜빡이듯이, 따끔거리듯이, 이따금씩 톡톡 저를 두드린답니다. 여긴 나를 부르거나 알은체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테니 누군가가 제 어깨를 톡톡 두드려도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나뭇가지가 걸렸나, 빗방울이 떨어지나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가곤 하지요.”

용두산 공원 입구 산책로에서 올려다본 부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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