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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노동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들의 우아함_켄 로치, <케스 Kes>(1969)

by 종업원 2020. 5. 5.

 2020. 4. 21


 지난주는 강의 동영상을 (못)만드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원고 마감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동영상 강좌 제작을 자꾸만 미루고 싶은 이유는 '일목요연하게 요점(만)을 잘 전달하는 제작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닐테고, 그런 제작술을 거부하고 싶은 저항과 차마 저항할 수 없는 형편이 충돌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수업 업로드'는 미룰 수도 없는 일이라 4주차를 기점으로 수업 영상 촬영을 밤을 꼬박 새운 아침에 하는 경우가 잦다. 파탄난 생활 리듬. 일요일에 강의 영상을 하나 올리고 간만에 '밤'에 취침을 했다. 


 새벽에 깨어 관람한 켄 로치의 <케스 Kes>(1969). 거의 모든 장면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영화라는 매체의 경이로움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선 문제아지만 누구보다 탁월한 존재인 캐스퍼를 찾아온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캐스퍼를 다른 선생들처럼 때리거나(이 영화에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캐스퍼를 때린다) 다그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거듭 질문 하고, 돌아오는 엉뚱한 답변을 사려깊게 경청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매 훈련과 관련된 생소한 단어를 칠판에 적게 함으로써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주던 마법 같은 순간은 모든 아이가 품고 있는 잠재성의 힘이자 그런 잠재적인 것을 포착해내는 영화의 힘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건 수업이라는 공통장의 것이기도 하다. 


 

 아이-노동자-맹금류(매).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들의 우아함과 근사함. 켄 로치 영화에선 많은 노동자들이 패배하고 자주 죽음을 맞이하는데 매의 매혹에 대해 이야기하는 캐스퍼를 통해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