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의 곳간

직업이라는 경계선을 밟고

by 종업원 2022. 10. 22.

2022년 8월 27일 토요일_스튜디오 <핲>

 

‘직업’은 현실과 현장의 단어입니다. 추상이나 낭만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엄정하고 냉정하며 때때로 비참하고 자주 한숨을 내쉬게 되는 직업이라는 세계. 그 뒤에 따라 붙는 ‘전선’은 필시 싸움(戰)이 이루어지는 위태로운 줄(線)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러니 <직업 전선>이라는 제목에서 ‘르포’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이 책의 서문 첫 문장을 빌려오겠습니다. 

“<직업 전선>은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노동 현장에서 꿈꾸듯이 일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쓴 수기 모음입니다.”

⏤송승언, 《직업 전선》, 봄날의책, 2022, 5쪽. 

 

‘수기’ 모음이라고 했는데, ‘꿈꾸듯이 일한다는 것’과 ‘이상한 사람’이라는 점이 걸립니다. 이 부분이 왜 걸리는 걸까요?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꿈꾸듯이 일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없다고는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우리 모두가 때때로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차갑고 냉혹한 현실과 현장에서도 놀랍게도 사람들은 잠깐 꿈을 꾸기도 합니다. 헛소리나 잠꼬대 같은 말을 늘어놓거나 해버리고 싶기도 하죠. 위험하고 무모한 망상이겠지만 어딘가에 있을 그런 이들이 쓴 수기라니, 꽤나 근사하지 않나요? 

잘 해야 하는 것과 (오래 해왔기에) 잘 할 수 있는 것. ‘직업’이라는 단어의 지층에 누적된 동사의 기억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잘 해야 한다는 압박과 잘 할 수 있다는 여유는 직업이라는 세계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둘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압박의 강도는 크고 여유의 시간은 짧기만 하죠. 자, 엉뚱한 생각입니다. 잘 해야 하는 것의 나사를 조금만 풀면 잘 할 수 있는 것의 기운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내가 서 있는 곳의 경계선을 밟고 다른 곳으로 손을 뻗을 때 내 손이 잡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인의 성정을 타고났으되 시인이 되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5쪽) 시인으로 등단은 하지 못한 이가 시적 재능을 살려 시가 아닌 소설을 쓴다면, 아니 바리스타가 된다면 그이가 내리는 드립 커피의 미묘한 맛은 어떨까, 혹여나 야간 경비원이 된다면, 심야 순찰 중에 그이가 발견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엉뚱한 것을 지켜보고 또 지키려고 할까… 어쩌면 조금은 엉뚱한 그곳에, ‘이곳’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진실’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져버리는 깜빡이는 진실 같은 것 말입니다. 

87회 <문학의 곳간>에선 조금 과감하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졌)다면’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마치 정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진지해도 좋고, 조금 엉뚱하거나 허무맹랑한 방식도 좋습니다. 이런 가정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스치듯이 해봤던 알바 경험을 이야기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이상한 방식(“꿈꾸듯이 일하고 있는”)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구요!  

87회 <문학의 곳간> 1부 사귐 시간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