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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도둑 러닝(2)_달리기 살림

by 종업원 2022. 10. 27.

2021. 10. 27

 

언제나 그렇듯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가난한 프리랜서들의 공통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이 자기심문적인 질문은 자주 예고도 없이 초인종을 누르곤 한다. 한창 러닝에 빠져 있을 때 ‘왜 달리는가?’에 대해 자주 묻곤 했는데, 뾰족한 답을 구하진 못했다. 다만 이 메타화의 과정이 피로하지 않았고 다소 흥미진진한 모험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즐기는 맘으로 이 질문을 품고 지낼 수 있었는데,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10월의 어느 날, 벌판을 달리던 수만년전의 인류가 떠올랐다. 빠르진 않았지만 그 어떤 동물보다 오래 달릴 수 있던 인류의 뜀박질에 대해서 말이다. 수년전 1일 1식을 하는 동안 허기를 넘어선 ‘텅 빈 상태’가 잠자고 있던 몸 안의 세포들을 깨우는 듯한 착각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한 시간동안 쉬지 않고 달리다보면 (비록 나이키 러닝화를 신고 아스팔트를 뛰고 있다고 해도) 벌판을 달리던 인류의 시간과 잠시 연결되는 듯한 망상에 가까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이거나,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하는 착각이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바로 착각의 힘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지난주 러닝은 수만년전의 인류를 집중적으로 생각해볼 요량으로 나섰지만 새 러닝화에 고무되어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내내 헐떡이며 겨우 달리는 걸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5km를 채우지 못한 건 앞서 가는 연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어두운 도로 쪽으로 비켜달리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맨홀을 밟고 발목이 크게 꺾였던 탓이다. 최소 발목 인대가 늘어났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꺾임’이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냉찜질을 열심히 해서인지 부상정도가 그리 심하지는 않은 거 같다. (여전히 부어 있지만!) ‘오버페이스’임을 알아차릴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여서 안간힘을 쓰게 되지만 뭐랄까, 이런 ‘일시적인 부도 상태’를 통해서 러닝이 체력이라는 살림을, 너무나 명료한 생활비를 쪼개어서 잘 운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임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것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생각하고 배우는 바가 많다.

 

책방 한탸, 비 맞은 로쟈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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