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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곳간

더 많은 가난⏤바깥으로 나아가며 이어가기

by '작은숲' 2023. 10. 18.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문학과지성사, 2003)은 한국이 IMF를 한참 지나는 길목에서 공개된 소설입니다. 그 당시 흔하게 접해온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나 그와 무관하게 마침내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달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뚜렷하게 파악하기 힘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밤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매일 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립니다. 가난에 얽혀 있는 사람들은 서로 느슨하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가난은 생생함보다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건 배수아가 가난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증언하거나, 해결의 필요성이나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따위에, 다시 말해 그동안 소설이 해왔던 일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수아는 가난 그 자체를 연구(탐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의 가난’이라거나 ‘빈곤층(계급)’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방향과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기에 이 소설이 잘 읽히는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론 가난을 그저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공들여서 읽는 것이 언짢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남성]평론가들이 배수아가 쓰는 소설을 [매우] 언짢게 여겼답니다. 왜일지 한번 짐작해보세요.)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어딘가 조금 이상해서 분명히 한국인데, 때때로 홍콩 같기도 하고 중국 어느 도시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분명 현재 이야기인데, 시대를 모호하게 만드는 낱말을 자주 써서 언제, 어느 곳이라 단정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강시>에선 동전을 ‘백동전’이라 부르고 있죠!) 그건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가난의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가난을 탐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그걸 한국에 안착하려 하지 않았기에 곳곳을 누빌 수 있다 여깁니다. 배수아를 따라다녔던 ‘이국적’이라는 딱지는 대체로 뜬금없는 허영심을 가리키는 손가락질에 가까웠지만 배수아는 진작에 이 좁은 땅덩어리에 퍼질러 앉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듯합니다.

가난은 족쇄처럼, 물귀신처럼 발목을 붙잡아 끝내 퍼질러 앉게 합니다. 가족이 그러한 것처럼, 애인이 그러한 것처럼, 시기심 많은 친구와 선배가 그러한 것처럼, 늘 쓰는 모국어가, 지역 사투리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배수아에게 ‘가난’은 붙들어매거나 들러붙어 끝내 내려앉혀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먼 곳까지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난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기보다 ‘가난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읽으며 가난이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데려갈 수 있거나 우리가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같은 해에 출간한 『에세이스트의 책상』의 첫 문장은 “더 많은 음악.”입니다. 그 이듬해에 『독학자』라는 전작 장편 소설을 출간합니다. ‘더 많은 음악’은 더 많은 ‘목소리’를 가리킵니다. ‘내용(메시지)’이 아닌 ‘발화’를 뜻하는 것이겠죠. 『독학자』 끝부분에 첨부된 작가의 말 마지막 대목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다. 마지막 기간 동안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작문을 통해 독일어를 공부하는 작문수업을 받았다. 한 주일에 한 번 우리는 선생님이 제시하는 테마에 맞는 작문숙제를 제출해야 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곧, 내가 원하는 문장과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의 간극 사이에서 투쟁을 벌였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독학자>는 그 동안의 내 작문숙제에 대해서 내가 독일어로 제출할 수 없었던 보충 부분이자 한국어 주석이 된다.”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히는 (유명) 소설가가 되기보다 쓰는 일을 지속하는 것. 익숙한 것만 지속가능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통해서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수아의 궤적을 통해 짐작하며 잠깐 배우게 됩니다.  97회 <문학의 곳간>에선 번듯한 성과는 아니지만, 그래서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는, ‘지속하고 있는 것, 끈질기게(persistence) 이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나와 가난’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주셔도 좋습니다. 
 

_<문학의 곳간> 97회 사귐 시간 주제(2023년 9월 23일 중앙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