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많은 가족이 변화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감지하고 가늠하며 이야기로 펼쳐낼 수 있었을까. 자신이 사는 곳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그 취급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스미는지, 마치 온도계처럼 ‘세상의 기온’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를 읽어내려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곧장 이런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나 냉랭한 것일까. 어째서 여기-지금-우리 이야기를 펼쳐내지 않고 있는걸까. 무엇이 이야기하는 걸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하틀랜드>는 “날아서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는 땅”으로 취급된 지역에서 대물림되는 가난의 악순환을 끊어내야겠다는 의지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곳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맞서고 있습니다. “자기도 어린아이면서 몸 안에 아기를 지니게 되는 운명의 굴레”를 거부해야만 벗어날 수 있기에,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상상 속의 딸 오거스트(August)에게 쉼없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상상 속의 오거스트는 ‘나’가 돌보는 ‘아이’(너)입니다. 돌보기(care) 위해 어떻게든 이야기를 전하고(narrative / relate)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겪는 일을 너는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것, 내가 뒤집어 써야 했던 수치심을 너는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알려줘야 할 것 있다는 듯이요. 그래서 세라 스마시는 내밀한 감정에만 집중하지 않고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홀로 위험하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사람에게 자세히 길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하나하나 세세하게 설명해주기 위해 내가 살아온 세상에 대해, 너 또한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해 빠짐없이 이야기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98회 <문학의 곳간>에선 ‘너’에게 꼭 전해야 하는 것(건네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하틀랜드>처럼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전하는 이야기여도 좋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에게 전하는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꼭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이것만큼은 꼭 전하거나 남겨두고 싶다 여기는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주세요.
_<문학의 곳간> 98회 사귐 시간 주제 (2023년 10월 28일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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