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13














이제 막 이사 온 사람처럼 장림 시장 둘레를 걸었다. 늦은 밤에 달리며 지나쳤던 길을 거슬러 걸은 셈인데, 여행지에서 걷는 낯선 거리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때때로 꿈속을 거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동네가 떠올랐다. 86년에 이사와서 2009년 독립할 때까지 살았던 성북고개는 가파른 오르막과 계단이 많아 산책이란 걸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그 전에 살았던 연산동에선 길과 집이 이어진 풍경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땐 내 부모님이 지금 나보다 젊었을 때다. 이렇게 볕이 뜨거운 날에도 땀을 줄줄 흘리며 일 하셨겠지. 젊은 시절 부모님의 몸에서 빗방울처럼 떨어지던 땀방울을 떠올리며 장림 여기저기를 거슬러 걸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을 지나쳤는데, 마주오는 이들 모두가 놀라울 정도로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길에서 우연히 부모님을 마주친다면 저와 비슷한 표정일까. 길에서 우연히 만나곤 했던 이들은 하나 같이 낯선 표정이었다. 땀을 흘리던 젊은 시절 부모님은 웃고 있어 다행이다. 그때 나를 떠올려보니 늘 매를 맞고 있구나. 그리 잘못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자주 두들겨 맞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리고 내가 살던 동네에선 누구나 누군가를 때렸다.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던 이가 누구였나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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