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간다 여기지만 실은 많은 이들은 도서관에서 길을 잃는다. 십진수 분류법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도서관 서가를 걷다가 무심코 펼친 책 한 권에서부터 길 잃기는 시작된다.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잃다lost’라는 낱말이 군대를 해산한다는 노르드어 los에서 왔음을 강조하며 병사들이 군대라는 대형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더 넓은 세상과 휴전을 맺는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군대란 단단한 대형을 갖춰 외부의 침투를 막는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이 아는 세상 너머로 나가려 하지 않는 세태를 떠올려본다면 갖은 시험 준비에 열을 올리는 사람으로 가득한 도서관 열람실이야말로 각자도생이라는 시대정신을 체화한 군대를 닮았다.
열람실 바깥으로 나오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복도엔 늘 하릴 없이 어슬렁거리는 이용객이 있고 하교 시간이나 도서관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찬다. 연제도서관은 주차장이 작은데, 이를 불편하다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작은 주차장이 외려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도서관은 걸어서 오고 가는 곳이라는 작은 문화가 영그는 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서관 주변을 산책하다 주차장 입구에서 ‘당근 거래’를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이 물건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인사가 도서관과 어울린다 생각했다. 본래 도서관은 예기치 못한 발견(serendipity)을 해온 탐험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무더운 날엔 도서관을 더위를 피하는 쉼터로 삼는 이도 많을 것이다. 어떤 공공도서관 열람실을 들여다봐도 친구가 없는 나이든 남성을 여럿 발견할 수 있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 부모님 같은 분들은 도서관 근처에도 가지 않/못하시겠구나 싶기도 하다. 연제도서관 상주작가실이 있는 지하엔 강당과 교육을 위한 강의실이 있는데, 매점이나 식당이 없는 탓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는 이들 또한 자주 오가는 터라 복도엔 늘 희미한 음식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사라져가는 도시락 문화를 희미하게 떠올린다. 절약을 이유로 복도 전등을 거의 켜두지 않아 지하답게 어둡지만 외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는 의자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서 선잠에 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빽빽한 열람실을 나와 너른 복도에 문제지와 프린트를 펴두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한동안 오전 내내 단짝처럼 붙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성을 본 적 있었는데, 한 달 내내 이어지는 것 같았던 그 대화가 꽤나 궁금했다. 피트니스 클럽이나 요가원에 가는 이들처럼 몸과 마음에 가득 쌓인 살림 응어리를 죄다 털어내고 있는 것이라 상상되었다. 언젠가부터 발걸음을 하지 않는 걸보니 도서관 프로그램이 끝났거나 사이가 틀어졌겠구나 싶기도 하다. 저녁 6시쯤엔 휠체어를 탄 이용객과 그이를 곁에서 돕는 이용객이 복도 끝에 앉아 문제지를 펴두고 함께 공부를 한다. 여전히 어두운 지하복도에서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댄채 묻고 답하고 귀 기울이고 알려준다. 한 시간 남짓 공부가 끝나면 함께 김밥이나 햄버거를 나누어 먹는다.
여름 볕이 무척 뜨거웠던 날, 1층 어린이 열람실 앞 휴지통 앞에서 등을 돌리고서 캔맥주 한 캔을 급하게 마시던 한 여성을 본 적 있다. 등엔 가방을, 어깨엔 에코백 세 개를 메고 한 손엔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뒤따라 들어간 터라 내내 뒷모습만 보았는데 그이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야무지게 마셨던 캔맥주는 카스(cass)였다.
⟪연제구보⟫ 8월호에 기고
⟪연제구보⟫엔 7매를 넘으면 안 되기에(6매만 보내라고 했지만!) 매번 어정쩡한 글을 쓰게 된다. 블로그에 글을 옮기면서 쓰지 못한 내용을 조금 덧붙였다. 어정쩡한 글에서 이상한 글로 바뀐 거 같다. 도서관을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구청에 보내는 글이고 상주작가라는 위치 때문인지 이래저래 살피게 된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글이어도 괜한 염려나 강박처럼 보이는 살핌은 모든 글쓰기에 똑같이 작동한다. 이번에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 홀로 전전긍긍함'을 짊어지고 어정쩡하게 썼다. 글쓰기가 좀처럼 흥이 나질 않아 썼던 글을 옮기며 조금 덧붙여 써보았는데 그렇게라도 하길 잘 한 듯 싶다. 맨손운동을 하는 것처럼, 마을을 달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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