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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씨앗(3)_바람, 늘, 어린이

by 종업원 2024. 1. 22.

: 제가 요즘에 곳간에서 나온 <여행하는 낱말>을 읽고 그거 때문에 ‘여행’에 심취해 있거든요. (곳간지기 : 오~~!) 뭔가 말만 나오면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바람이 ‘여행하는 숨결’이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서 이렇게 풀어봤어요. 다대포에 4월이 오면 사스레피가 내쉰 숨결과 마른 파래와 조개들이 내쉰 숨결이 한 데 어울려 봄맞이 하러 갑니다. 제가 사는 다대포에 사스레피나무 군락이 있어요. 3월이나 4월이 되면 사스레피나무에서 작은 꽃이 피는데요, 향기가 엄청나답니다. 그래서 사스레피나무 군락과 제가 사는 집은 꽤 떨어져 있지만 바람이 불면 저희 동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벌써 냄새가 다르죠. 특히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불잖아요. 그러면 냄새를 맡게되는데 여러가지 향이 난답니다.


: 저는 이렇게 풀어봤어요. 
“훅 불어오고서 확 떠나가지만 스르륵 한바퀴를 돌고나서 새롭게 다가오는 가벼운 하늘동무. 나한테서 피어나더니 너한테 가고 너한테서 흘러나와서 나한테 오고 언제 어디에서나 다 다르게 깨어나는. 가볍게 밝아서 놀며 노래하는 마음을 담은 빛줄기. 이 바람을 안고서 온몸이 개운하고 저 바람을 보고서 온마음을 일으킨다.”
바람 뜻이 많으니까 조금 짧게 쓰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적어봤습니다. 


: 저는,
 “바라는 쪽에서 불어오는 숨결이면서 뜻하지 않는 곳에서 찾아오는 숨결. 트여 있다면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바람이 깃든다. 바람은 머물지 않기에 쥘 수 없고 가질 수 없다. 다만 지나가기에 문득 깃들 수 있고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뜻하는 낱말도 있지만 이 또한 앞선 바람과 맞물린다.”
'바라는 마음'과 '바람이 부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는 로베르 브레송이 만든 <사형수 탈옥하다>라는 영화 부제가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거든요. 5-60년대 누벨바그 감독들이 영화라는 매체에 온혼을 담아서 만들던 시기에, 완전히 새로운 예술에 거는 기대랄까요. 가령,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염원을 담기도 했지만 어쩌면 신과 만날 수 있는 장소로서 영화를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까운 일본에선 구로자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도 영화를 우리 삶을 기록하는 매체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다른 영역과 접속하는 것으로 대하는 거 같은데, 아마도 그런 바탕 아래에서 브레송이 말한 바람은 희망하는 쪽으로 분다고 할 때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는 거 같아서요. 그 말이 불현듯 떠올라서 거기에 기대에서 풀어봤습니다. 


: 영어로 봤을 때도 wind와 wish, want가 이어져 있겠네요. 그리고 마녀가 witch잖아요. 마녀라고 하면 일본 한자거든요. 그래서 저는 ‘바람아씨’로 고쳐서 씁니다. 마녀 이름에 여자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남자는 신령이나 신선으로 치고 여자는 마녀로 하거든요. 우리문화로 쳐도, 서양문화로 가도 바람을 읽는다고 하는 사람은 하늘을 읽는 셈이고 하늘을 읽는다면 자연을 읽는 셈이라서, 숲을 아는 사람이에요. 마녀가 늘 보글보글 약을 끓이잖아요. 이상한 약이 아니라 살리는 약을 만든다는 상징이라고 느끼거든요, 언제나. 실제로도 이상하게 그리는 마녀 이야기가 아닌 마녀가 어떤 삶인지를 제대로 그리는 이야기나 책을 보면 그야말로 마을과 먼 깊은 숲 한복판에서 약초와 약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녀였죠. 신령과 신선으로 여기는 남자들도 똑같겠지만 다만 마녀는 산이 아닌 숲에, 그게 조금 자리가 다를 뿐이지 둘 다 숲을 품고 약초를 풀꽃나무한테서 얻는, 그러니까 벌레나 짐승한테서 얻는 게 아니라 풀과 열매 씨앗에서만 약을 얻더라구요. 다들. 그래서 마녀를 ‘바람아씨’로 풀어서 씁니다. 또는 ‘숲아씨’라던지요. 아니면 ‘바람순이’나 ‘숲순이’로요. 


살림 씨앗(3)_부산 중앙동 '곳간'_2024년 1월 19일 금요일 저녁 7시~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