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과 ‘벌레’ 사이의 말
새로운 빈곤이 우리의 삶을 뒤덮고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철지난 유행어가 영속하고 있는 시대를 주관하고 있는 새로운 강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생존’이라는 최종 심급이 우리들의 삶을 좌우한다. 누군가가 사라져야 내가 산다. ‘절멸’의 공포가 ‘너와 나’의 ‘절연’을 조건으로 하는 셈인데, 이러한 ‘관계의 종말’은 우리들의 일상이 더 이상 경험으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경험은 축적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내·외적으로 영락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험의 빈곤. ‘생존’이 ‘경험’을 대체해버린 시대, 그것을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라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생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들’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벌레’처럼 살아[남아 있어]야 할 때, 사람들은 ‘벌레’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말’로써 증명해야만 했다. 나는 벌레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나는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썼다. 벌레와 인간 사이에 말들이 넘쳤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만이 산다. ‘벌레’는 없다. 인간과 벌레, 그 간극이 ‘말’을 만들어내는 진원지였다. 벌레가 없어지고 오직 인간만이 남으니 ‘말’도 사라졌다. 그 많던 ‘말’(벌레)들은 어디에 갔을까? 벌레와 인간 사이를 그득 메웠던 말들은 정확하게 ‘생존’에 대한, [살아] ‘남아 있음’에 대한 부채감의 증거이기도 했다. 홀로 살아남았음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람을 벌레로 만든다. 내가 벌레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사람과 벌레 사이에서의 진자 운동은 ‘나는 사람이다’라는 쪽을 향해 맹렬하게 움직일 테지만 그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외려 ‘나는 벌레일지도 모른다’라는 그 반대의 축으로 기우는 힘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은 자’들이었고, 그 때문에 ‘산다는 것’을 의심했다. 벌레처럼 기어가는 문자를 쓰면서 사람임을 의심하고 사람임을 증명해갔다.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다.
박완서는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 관한 소설을 썼다. 검질기게 살아남은 자들에 관해 썼다. 박완서에게 있어 ‘살아남았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자(死者)를 “은밀히, 음험하게” 삼켜버린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망령이 처박혀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들이 있는 곳을 명치 근처에서 체증을 의식하듯 내 내부 한가운데에서 늘 의식해야만 했다. 그 느낌은 아주 고약했다. 어머니와 함께 두 죽음을 꼴깍 삼켰을 당시의 그 뭉클하기도 하고, 뭔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속이 뒤틀리게 매슥거리기도 하던 그 고약한 느낌은 아무리 날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박완서, 「부처님 근처」, <<어떤 나들이: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1>>, 문학동네, 1999년, 90쪽.
어떤 작가에게 소설 쓰기는 ‘상복을 벗지 못하는 상주’(전성태)의 애도 작업이었지만 박완서에게 소설 쓰기란 ‘상복을 입지 못하는 슬픔’에 가깝다. ‘그들’을 “은밀히, 음험하게” 삼키고 내가 살아 있다. 내 삶 속에 ‘그들’이 갇혀 있다. 나는 그들을 뱉지 못하고, 그 죽음에 대해 통곡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쓴다. 소설은 망령들을 꿀꺽 삼켜버린 것에 대한 부채감으로 씌어지지만 망령들의 말이 아닌 살아남은 자들의 말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소설가란 결국 망자(亡者)의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들의 말을 되뇔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자들의 말로 내 안에 갇혀 있는 망자들을 내보내는 ‘푸닥거리’는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실패는 소설가(살아남은 자)가 꿀꺽 삼켜버린 망자들의 죽음을 잊지 않으려는, 애도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증표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는 실패하지만 살아남는다. 기꺼이 살아남아 한 시대를 증언하기 위해, 한사코 증인의 자리에 서기 위해 살아남아, 쓴다.
가령, ‘박완서=소설가’라는 등식은 좌변이 우변의 규정에 순전히 기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 등식이 한 작가를 칭송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사인 것만도 아니다. 박완서의 작품은 오늘날의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잊혀진 물음 앞으로 우리들을 다시금 불러 세운다는 점에서 ‘소설가’라는 우변은 ‘박완서’라는 개별 작가의 자장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시대에 따라 소설의 형식과 기능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 변화를 서둘러 승인함으로써 ‘자명함’이라는 신화를 생산하는 데 일조하지 않고 바로 ‘시대의 자명함’이 지워버리는 은폐된 기원을 기꺼이 노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박완서=소설가’라는 단순하고 명징한 등식은 ‘시대의 자명함’이라는 폭압적인 시스템이 삭제해버린 사라진 이들, 바꿔 말해 은폐된 기원들을 형상화하는 데 더 없이 유의미한 체계라 할 수 있다.
2. 첫사랑, “살기에 가까운 생기”
『그 남자네 집』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돌아보며 보다 넓어진 포용력으로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작가의 관용적 태도가 소설 전체를 주관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얼핏 노년에 회상하는 ‘첫사랑’의 아스라함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박완서의 다른 소설이 그러하듯 지나가버린 시간을 떠올린다는 것은 비단 낭만적 정조에 침잠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남자네 집』이 ‘빛나던 청춘의 시절’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소설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구슬 같은 시절’이 아니라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서울의 풍경이며 그 폐허 위에서 계속되어야만 하는 끈질긴 목숨들의 악다구니에 다름 아니다. “나 돌아가리라, 구슬 같은 처녀로.”(171쪽)라는 문장이 『그 남자네 집』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정조이긴 하나 그 위에 전쟁이 끝난 서울의 폐허 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일구어내는 “살기殺氣에 가까운 생기”(40쪽)가 포개어져 있다. 살아남은 자들이 뿜어내는 ‘생기(生氣)’에 ‘살기’가 묻어 있고 첫사랑은 전후의 폐허 위에서 ‘무섭게’ 돋아난다. 왜 첫사랑처럼 달콤한 것을 ‘무서운 것’이라 지칭하는가? 생에 대한 의지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 발아했던 첫사랑의 뒷면에 생의 비참과 부끄러움이 등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절을 견뎌내기 위해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달뜬 감정은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자들이 뿜어내던 “살기에 가까운 생기”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구슬 같은 처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전후의 폐허’를 거쳐야만 한다. 첫사랑에 대한 회상은 살아남은 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부끄러움과 치욕을 다시 떠올리는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완서는 오랜 시간 동안 치욕스러운 목숨과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움에 관해 써왔다. 첫사랑이 가장 치욕스러운 시절에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후의 풍경을 적실하게 논파하고 있는 “살기에 가까운 생기”라는, 간단하지만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짧은 표현 속에 치욕스러운 목숨과 첫사랑의 달콤함이 뒤섞여 있다. 이 소설이 첫사랑에 대한 회고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의 주요 내용이 전후의 삶과 그 시공간을 뚫고 나가려는 생의 몸부림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험난하고도 남루한 시절”(120쪽),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첫사랑은 ‘목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에 ‘사치’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첫사랑에 ‘금기’의 표지가 붙어 있는 것은 전후의 궁핍 속에서 행한 유일한 ‘낭비’이자 ‘사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첫사랑이라는 사치가 삶을 살아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 사치가 ‘목숨’을 ‘삶’으로 바꾼다.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44쪽)
첫사랑이라는 사치, 그것은 단 한 번도 삶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던 이가 짧은 시간이나마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구슬 같은 처녀’라는 찬사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말 속에서 ‘생의 주인공’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도 쉬쉬하며 숨어 살아야 했던 ‘전재민의 가족’이 아닌, ‘나’가 그 말 속에 각인되어 있다. 첫사랑이라는 사치에 매달렸던 것은 이성을 향한 이끌림보다 오롯한 ‘나’가 되고 싶은 열망이 더 컸기 때문이지 않을까. 악다구니로 들끓었던 전후의 틈바구니 속에서 ‘목숨’이 아닌 ‘삶’을, ‘가족’이 아닌 ‘나’를, ‘역사’가 아닌 ‘자기 진술’을 가능케 한 것이 첫사랑이라는 사치였을 터. 요컨대 궁핍한 삶 속에서 정작 사람들이 갈망했던 것은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입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삼킨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삼킨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말’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자신 대신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지 못하고 ‘국가라는 큰 몸뚱이의 자반뒤집기’(36쪽)에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는 이들. 첫사랑이라는 사치를 누리던 시절은 침묵으로 봉인된 채 살아남았음에 대한 ‘치욕’을 삼켜야만 했던 입이 무언가를 내뱉을 수 있던 시간이자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을까. “고작 혀끝에서 목구멍까지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할 수 있다면 딴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136쪽)는 ‘나’의 토로를 그저 개별자의 일탈적 욕망만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첫사랑’이라는 사치는, ‘시’는, ‘딴생각’은, ‘먹는 입’을 ‘말하는 입’으로 바꾼다. 첫사랑이 “진흙탕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이자, “범속하고 따분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확하게 ‘문학’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3. 감정의 역사화
인구의 집중 현상과 의식주의 절대적인 부족은 사람의 실생활뿐 아니라 위계질서나 윤리 의식에도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67~68쪽)
집에서 버스 한 정거장 거리만 걸어가면 종로 5가 전차길이 나오고 길을 건너면 바로 동대문시장 중에서 가장 활기넘치는 곳이었다. 온갖 싱싱한 채소와 생산과 건어물과 익은 음식과 날음식과 고래고래 악을 써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와 에누리하고 흥정하는 소리가 전후의 빈곤을 비집고 참을 수 없는 힘으로 분출하는 곳을 향해 나는 씩씩하게 돌진했다. (중략) 목청을 높여 흥정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소리에 나는 정글에 들어선 문명인처럼 위험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그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119~120쪽)
전쟁은 그것을 겪은 이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게 경험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의 다수성’은 특정 이념과 국가나 민족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서사에 봉쇄되어왔다. 인간이라는 범주가 새롭게 규정되는 것에서부터 개별자들의 소소한 감정과 지각 능력의 급격한 변화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지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또 생산해낸다.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될 때, ‘자기부정’의 회로가 가동된다. 이념, 국가, 민족이라는 이름의 거대서사가 구성원들의 경험에 재갈을 물린다. 전쟁이 “사람의 실생활뿐 아니라 위계질서나 윤리 의식에도 엄청난 지각변동”을 초래했을 때, 박완서는 그 거대한 변화가 삼켜버린 개별자들의 경험과 감정들을 살려내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그것이야말로 박완서 문학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은 잘도 잊고, 잘도 용서하고 언제 그랬더냐 싶게 상처도 감쪽같이 아물리고 잘만 사는데, 유독 억울하게 당한 것 어리석게 속은 걸 잊지 못하고 어떡하든 진상을 규명해 보려는 집요하고 고약한 나의 성미가 훗날 글을 쓰게 했고 나의 문학정신의 뼈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박완서,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 박완서 문학앨범>>,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31쪽
이를 가족사의 비극이나 개인적인 슬픔을 위무하는 것이라 폄훼해서는 안 된다. 권명아가 적실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박완서 문학에서의 ‘자기 경험’, 혹은 ‘자기 이야기’가 개인적 경험이라는 제한된 범주에서 해석될 수 없는 것은 “박완서 문학에서 ‘자기 경험’ 혹은 ‘자기 이야기’로서 소설이란 결코 ‘우리 모두’의 역사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도 될 수 없는 근대사의 본질적 모순에 대한 근원적 비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때 ‘자기’란 그 어떤 타자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차이를 지닌 ‘개인’이자 근대의 메커니즘에서 언제나 ‘우리’가 될 수 없었던 정치적 소수자들로서 ‘자기’를 의미”(*권명아, 「미래의 해석을 향해 열린, 우리 시대의 고전」,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 박완서 문학앨범>>, 앞의 책, 253쪽)한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박완서의 소설이 결코 무게감을 잃지 않는 것 또한 그가 탐지하여 언어화하고 있는 것이 개인적인 감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단층’을 이루는 ‘결(紋)’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박완서에게 ‘소설’은 개별자들의 감정을 역사화하는 작업이라 바꿔 말할 수 있다. 감정의 역사화,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무참히 토막 난 상처”(박완서)를 서둘러 봉합하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라 “싱싱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다. 이 ‘싱싱한 피’가 “인간들을 철저한 생존욕망의 포로로 만들거나 증오의 화신”(**권명아, 「박완서-자기상실의 ‘근대사’와 여성들의 자기찾기, <<역사비평>> 45호, 1998, 405쪽)으로 만드는 자기 박탈의 회로, 다시 말해 삶의 총체적 박탈로 이어지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수많은 목숨과 삶을 앗아갔지만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싱싱한 피’를, “우리 모두의 무참히 토막 난 상처” 위에 씌어지는 개별자들의 언어를 유산으로 얻게 되었다.
4. 벌레들의 시간, ‘치욕’이라는 산파
『그 남자네 집』은 ‘구슬 같은 처녀’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에 관한 소설이면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말’을 봉쇄당하고 ‘자기부정’의 회로에 감금되어 있는 이들에 관한 소설이다. 동시에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 이들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이러한 중층적인 구조는 단지 필자가 만들어낸 해석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다. 전후 폐허 위에서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두 연인의 연애가 이 소설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소설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소설의 대부분은 짧은 연애가 끝난 뒤 남겨진 길고 긴 결혼 생활과 우연히 ‘그 남자의 집’을 떠올리게 된 노년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짧았던 그 시간의 줄기와 감정의 결이 개별자의 삶과 복잡하고 부박했던 전후의 풍경을 엮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전후의 궁상과 어울리지 않는 사치 풍조와 향락산업, 외국 군인과 양공주의 범람, 그들이 만들어내는 양풍에 대한 경멸과 동경, 내몰리듯이 생활 전선으로 나선 전쟁미망인들과 생과부들의 초인적인 생활력, 전쟁이 앗아간 인명 손실을 단숨에 복구시키고 말 것 같은 베이비붐, 악착같은 생존 경쟁의 터전인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의 번영, 하룻밤 사이에 지을 수 있는 하꼬방 집들”(182쪽)이 ‘억압당했던 성적 에너지의 표현 방법이지 않을까’라는 ‘나’의 생각은 『그 남자네 집』이 “나는 인간이다. 남보다 도덕적이지도 동물적이지도 않는 평균치의 인간일 뿐이다.”(187쪽)라는 단 하나의 문장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구슬 같은 처녀’로 돌아가고자 희구하는 것은 그 ‘사치스러운’ 이름 속에 전쟁이 끝난 후 저마다 겪어냈지만 단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무의미와의 싸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그 ‘무의미와의 싸움’ 속에 ‘나는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개별자들의 외침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문장으로 새겨왔다.
그것이 다 벌레의 짓이었을까. 내 젊음을 황홀하게 빛낸 그 기쁨의 시간이 다 벌레의 선물이었을까.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다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우리들의 시간이고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벌레들의 시간이었을까.(200~201쪽)
‘현보(그 남자)’의 머릿속에 숨어 있던 기생충이 실은 ‘구슬 같은 처녀’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을 있게 했다. ‘벌레들의 시간’ 동안 그 젊은 연인들은 ‘평균치의 인간’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네 집』이 절절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젊은 남녀의 짧은 연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벌레들의 시간’이란 폭압적인 근대 시스템이 지워버렸던 ‘타자들의 시간’이라 바꿔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제대로 기록된 바 없는 ‘누군가의 시간’이, ‘의미’를 가지지 못했던 그 싸움의 시간이 우리를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했다. ‘나’가 빠져나온 미군부대의 자리를 대신 메웠던 ‘춘희’가 결혼 이후 중산층 가정으로 안착해가던 ‘나’의 일상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군부대에서 생활하다 양공주가 되어버린 ‘춘희’는 ‘나’의 기억에서도, 우리들의 기억에서도 삭제되어야 했던 이다. 자신이 근무하던 자리를 대신 채운 ‘춘희’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또한 “딸이 미군부대에서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사는 걸”(30쪽) 치욕스러워 하던 자신의 가족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몸에도 같은 기관이 있을 텐데 나는 여자의 성기의 전모를 보는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중략) 눈부시게 밝은 불빛 아래 샅샅이 드러난 여성 성기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마치 검은 털을 가진 짐승의 상처처럼 다만 검붉고 처참했다. (중략) 춘희는 신음소리를 참지 못하면서도 제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춘희는 지금 나를 통해 제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233~234쪽)
같은 시기 임신을 했지만 한 사람은 축복을 받고 한 사람은 음침한 병원에서 중절수술을 받아야 한다. ‘춘희’가 중절수술을 받는 동안의 저 짧은 장면에서 ‘나’와 ‘춘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본다. 침대의 아래에 서 있는 ‘나’의 자궁에는 수태의 시간이 흐르고 그 위의 ‘춘희’의 자궁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생명을 긁어내야 하는 자기 부정의 시간이 흐른다. 아기를 가질 수도 없고 뿌리를 내릴 수도 없는 “짐승의 상처처럼 검붉은 춘희의 성기”(235쪽)에 ‘벌레의 시간’이 흐른다. ‘구슬 같은 처녀’의 반대편에 ‘양공주 춘희’가 있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지만 평생을 ‘자기박탈’과 ‘총체적인 자기 부정’의 회로 속에 감금당해야 했던,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허망한 단어에 기대어 평생을 버텨냈던 ‘양공주 춘희’가 있었다. ‘구슬 같은 처녀’를 회상하기 위해서 전쟁이 남겨둔 궁핍과 궁상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벌레’가 아닌 ‘평균치의 인간’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우리들은 “짐승의 상처처럼 검붉은 춘희의 성기”속에 흐르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 ‘그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묻자. 우리는 어떻게 ‘평균치의 인간’이 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벌레가 아닌 인간이 될 수 있었는가. ‘벌레들의 시간’이, ‘타자의 시간’이 우리를 이끌고 왔기 때문이다. 조금도 구슬 같지 않은 ‘춘희’는 삭제되어야만 했던 ‘시대의 치욕’이다. 그 치욕을 삼켜버리고 우리는 ‘말’을 가지게 되었다. ‘치욕’이야말로 ‘나는 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평균치 인간’의 ‘말’을 낳은 ‘산파’인 것이다.
처음엔 식구들 굶길까봐, 겨우 밥은 먹을 만해지니까, 공부는 시켜야겠지, 그러나 잘 먹이고 싶고, 엠병, 욕심 부리다 부대에서 쫓겨나고 계속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 바닥에서 그냥 갈보로 눌러 앉게 되고, 그러다 너무 힘들면 엠병, 어수룩한 놈 만나 살림도 차려보고 (중략) 닥치는 대로 PX 물건 사오라고 시켜서 야미 장사하고, 야미 장사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엠병, 나 별의별 짓 다했다우.(267~268쪽)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평균 이하의 저 ‘잉여의 말’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춘희’는 ‘엠병’이 없으면 ‘말’을 하지 못한다. “돼먹지 않은 영어가 서방한테 통한 건지 서방 말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답답해서 기통이 터질 때마다 엠병을 할, 하던 게 엠병이 돼버렸”(265쪽)다는 ‘춘희’의 토로와는 무관하게 ‘엠병’이 ‘평균치의 인간’을 만든, ‘말의 산파’다. ‘엠병’은 욕이 아니라 한 시대를 넘어가기 누군가가 감당해야만 했던 한줌의 ‘치욕’이다. 그 치욕을 꿀꺽 삼켜버리고 우리들이 살아왔다. 시인 이성복이 ‘치욕’을 일러 “지느러미처럼 섬세하고 유연한 그것 애 밴 처녀 눌린 돼지머리”라는 성스럽고도 세속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은, 아울러 치욕이 아름다우며, 달며, 따스하며, 눈처럼 녹아도 이내 딴딴해지지만 기필코 새어나오는 것이라고 한 것(***이성복, 「치욕에 대하여」, <<남해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년)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삼켜야만 했던 치욕이 우리를 살게 했다. 그 치욕/벌레/타자의 시간을 흔적도 없이 꿀꺽 삼켜버리고 ‘평균치의 인간’은 ‘말’을 가지게 되었다. 벌레가 아닌 인간의 말을 낳은 것은 ‘치욕’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치욕’이다.
박완서 전집, <<그 남자네 집>>, 세계사, 2012 해설
1. 새롭게 정리되어 출간되는 박완서 전집 작업에 함께 하게 되었다. 해설 한편을 쓰는 일이었지만 그 어떤 원고보다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박완서 선생의 작품을 몇편 읽어보지 못했다. 그간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지만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 글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박완서 선생의 소설은 제대로 읽혀져야 한다. 내가 쓴 해설이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한 하나의 노력으로 읽혀졌으면 한다.
2. 출판사의 요구로 작성했지만 실리지 않은 <박완서 선생과 나>라는 글을 여기에 올려둔다.
학부 시절, 학술제에 초청된 박완서 선생을 기억한다. 아니,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박완서 선생이 살아계시는 동안 나는 선생의 작품을 읽지 않았기에 그날 선생께서 하신 단 한마디의 말도 기억하지 못한다. 선생이 영면하시고 나서야 나는 선생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을 읽기 전부터 내 어휘가 선생께 기대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선생의 작품을 집어든 대부분의 이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 선생은 가시고 없지만 나는 이제야 선생을 만나고 있다. 내가, 꿀꺽 삼켜버린 기억나지 않는 ‘그날’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으니 아, 내 뒤늦은 어리석음조차 선생을 따라갈 수 없게 되어버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