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밖에서 혼자 산지 4년이 되어간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던 차, 2008년 운좋게 전문대 강의를 맡게 되면서 월 40만원정도의 수입임에도 겁없이 독립을 결심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퇴근했고 부산대 앞의 ‘3단 토스트’와 1000원짜리(!)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며 원고를 썼다. 100매의 원고를 써도 10만-20원정도 밖에 지급하지 않는, ‘교보’에서도 ‘알라딘’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기 위해 미련하고 지독하게 읽고 썼다. 그리고 강의 내용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이는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 대중문화 등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대학이란 곳에서 한 두 강좌를 맡게 된 것도 횟수로 4년이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쓰고 있고, 강의를 하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절주절, 소곤소곤 쉬지 않고 말하기 좋아하는 나이지만 출강하고 있는 수업에 대해 공개적인 방식으로 말해본 적은 별로 없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강의에 대한 대책없는 자부심이야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나 그걸 말하는 것은 어쩐지 민망하고 겸연쩍기만 한데, ‘강의’란 기록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강의는 워낙 ‘현장감’이 중요한 것이기에 그것을 따로 떼어 말한다는 것이 어쩐지 맞지 않다는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록’을 염두에 둘 때면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이유에서다. 강의는 연극무대와 비슷하다. 강사의 중요한 역할은 무대의 여러 요소들을 적절하게 조율하고 또 이끌어내는 ‘연기’에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모두가 저마다의 배역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좋은 강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강의실에 들어서면서 나오기까지의 모든 행위는 하나의 제의처럼 일정한 절차 위에서 진행된다. 물론 그 제의에 참여하는 이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대학의 현실이라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강의야말로 주고 받음의 노동을 통해서만 구성되며 또한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기에 무용(無用)해보이는 강의라는 주고 받음의 노동은 다른 공동체를 열망하는 희망을 출처로 한다.
내세울만한 학연(學緣)이 없기 때문인지 등단 이래 나는 늘 불안하고 불안정하게 운신해왔는데, 참으로 많은 곳을 전전하며 한시적인 이름표를 달고 이래저래 움직여왔다. ‘직책’은 그 누구보다 많았지만 나를 향한 무수한 호명(명령)에 답하다보니 정작 내 이름은 희미하기만 하다. 다만 가쁜 삶의 리듬만이 몸과 정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다보니 ‘소속 없음’이야말로 나의 이름이며, 정체성이 되어버린듯 하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지반(기질) ‘사이’에서 오늘도 내 몸과 정서는 가쁘기만 하다. 요컨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강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공동체를 건사하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과 노동 또한 기록될 수 없다. 공동체란 내부적인 관계의 부대낌을 통해서만 건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관계의 부대낌’은 ‘현장감’에 다름 아니기에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연합과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그 노동(부대낌)의 시간들이 기록할 수도, 기록되지도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공동체란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부대낌의 노동임을 고요히 자각하게 된다.
대외적인 활동이나 눈으로 단박에 확인할 수 있는 성과 따위로 공동체 운동을 가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동체란 곧 ‘이름과의 불화’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꺼이 ‘익명’이 되어 공동체라는 희망을 조형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직책’을 통해 획득하는 소속감이란 허영이나 환상일 따름이다. ‘나’(이름)를 죽이고 익명의 노동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을 때 공동체라는 이름이 새겨진다. 이름없음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공동체라는 이름. 물론 자본제적 체계의 재생산을 목적으로 증식하는 이윤 집단 또한 ‘익명의 노동’을 비용으로 하지만 현명하게 주고 받는 ‘부대낌’의 강도와 질적 차이가 결정적으로 각각의 공동체의 성격을 가른다.
‘문학’이란 기록될 수 없는 것을 남기려는 고투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강의와 공동체야말로 문학적인 활동인 셈이다. 읽고 쓰는 능력(literacy)이 우리를 만나게 한다. 나눔을 가능하게 한다. 공통적인 것(the commons)을 조형해나가는 부대낌의 노동을 지칭하는 오래된 이름을 다시 새겨본다. 강의, 공동체, 문학. 이 ‘익명의 이름’이 내 삶의 반경을 구성하는 세 개의 꼭지점이다.
궁색하고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시작하는 이 짧은 글을 몇 차례 다시 읽다가 이곳에 올려두기로 한다. 이 글에 반영되어 있는 한두 달전의 '정서'를 기억해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뚜렷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몇 가지의 활동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진행형'의 형태로 가져가야할 필요성 때문이다. 나는 이 불완전한 글을 이어서 쓸 필요가 있으며, 기꺼이 이어 쓸 것이다. 이 글이 전혀 잡아내고 있지 못한 공동체를 건사하기 위해 필요한 '의례'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름없는 부대낌의 노동'이란 결국 공동체의 덕(virtue/virtual)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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