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복하는 생활

나날이 선명해지는 삶

by 종업원 2013. 2. 16.

2013. 2. 16



며칠을 숨죽이고 지냈다. 숨죽이고 자다가 벌떡 깨어 보일러를 껐다. 보일러를 틀어놓고 잠들어버릴 땐 어김없이 1시간도 되지 않아 잠에서 깨어 보일러를 끄고서야 3~4시간정도를 내리 잘 수 있었다. 불침번처럼 정확하게 깨어 뜻한 바를 수행한 뒤 낭비 없이 잠들 수 있어야 한다. 


메모를 하지 못한 날이 길어진다.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숨통은 누군가를 만나야만 트인다. 그래야 또 조금 쓸 수 있다. 그간 애를 써가며 꾸역꾸역 홀로 썼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글(삶)이 아니다. 글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중요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희망 하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노동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그런 글들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작정이다. 


오늘 누군가가 내가 사는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그가 나를 구했다.' 추레한 내 집의 출입구에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 무언가를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닌 더 많이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일러를 틀어놓고 누워 요 며칠간 숨죽여 지낸 시간을 돌이켜 봤다. 그리고 개구리처럼 벌떡 일어나 보일러를 끄고 다시 몇자 썼다.  


별볼일 없이 말만 많은 삶이지만 성실하게 애써 가꾼다면 내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곳이 언제나 윤이 났듯이 쓸모없어 보이는 내 '낡은 가구'들도 언젠가는 '어떤 쓸모의 빛'을 내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연필을 깎아야 한다." 책을 읽는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다. 글을 쓰는 이유도 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삶이란 무언가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노동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매일매일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더 선명해지고 있다면 그(녀)의 삶은 존중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날이 선명해지는 삶> 2013년은 이 구절을 위해, 이 구절을 선명하게 하는 해로 삼아볼만 하다. 내 말과 버릇을 불침번처럼 살피며 근기 있게 사람들과 만나야겠다('말'과 '버릇'이 잠들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여러 원칙들을 '말하지 않아도'되는 그런 선명한 생활을, 버릇을, 관계를 벼려간다면 이 가난하고 부박한 도시를 '당신들'과 바장이며 걷는 내 걸음100년의 시간정도는 너끈히 넘나들 수 있으리라.  



'회복하는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수왕 : 메인스트림(mainstream)의 감각  (0) 2013.06.16
장르라는 하나의 세계  (0) 2013.06.10
말들의 향방  (0) 2013.01.06
이름 없는 자리  (0) 2013.01.05
메모에 관하여(1)  (0) 201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