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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163

다시 돌아올,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 구절, 단어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밑줄을 긋거나 그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순간을 음각해보지만, 나는 분명히 이 대목을, 이 구절을, 이 순간을 흔적도 없이 잊고 말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이 자리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활자들을 붙들어 들 수 없다. 아니 활자가 내게로 오는 순간,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되어, 소리의 육체(육성)가 되는 순간이기에 이 순간은, 목소리가 머무는 지금-여기-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내가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잊을 줄 알면서 이 순간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이 자리로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2010. 4. 20.
건반을 치듯, 아래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갈 때의 경쾌한 발걸음, 발놀림, 발연주.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빠르게, 아니 리드미컬하게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그 소리에 발맞추어 도 레 꽃 솔 2010. 4. 16.
긴머리 노란 청년 몇 권의 책이 배달되어 왔다. 단 한순간도 기다린 적이 없고, 온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던 것들. 갑작스레 떨어진 체감 온도에 '꽃들은 어쩌나'는 생각을 뒤늦게 떠올린 것처럼, 오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억하겠지만 것이지만, 뒤늦음이라는 회한에 휩쓸려버릴 그런 기다림들, 단 한번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기꺼이 찾아오는 그런 것들. 책을 배달하는 분이 바뀌었는데, 아마도 알라딘에서 택배회사를 바꾸었던지(배송일이 늦다는 불편사항을 알라딘에 접수시킨 적이 있다), 택배 기사님이 교체된 모양이다. 모든 기사님들이 마치 인사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무뚝뚝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물건만 전해주고 가던 그 택배 기사님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2010. 4. 14.